사는 이야기

coorge 에서 새해를 맞다.

아르쎄 2018. 1. 4. 02:17

 

인도에 온지도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신년을 맞았다.  현지 친구들이 coorge라는 곳으로 여행을 간다 하길래
별 일도 없고 해서 따라나섰다.


30일 저녁 벵갈루루를 벗어나기 전에 술집에가서 다들 취향에 따라
술을 마셨다.
녀석들이 의도적으로 나에게 술을 먹였고 그 덕에 난 거의 인사불성이 되어
벤의 뒷자리에 혼자 꼬꾸라졌다.


밤새 차를 몰아갔다. 트렁크 창으로 보이는 북두칠성의 마지막 두별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보아
북극성은 지면아래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북극성을 뒤에 둔채 남쪽으로 이동중이다. 

길 양편으로 나무들이 차의 불빛을 받아 어둠사이로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덧 coorge 의 시내 한편에 도착한 우리는 그곳에서 길을 물어
한 리조트를 찾아갔다.

말이 리조트지 한국의 여인숙의 비할바가 아니었다.
얘네들의 문화는 뭔가가 칙칙하다.
3층의 건물로 나름 예쁘게 짓는다고 지은 건물이긴  하지만 인도의 건물이 다들 그렇듯이
마감이라든가 세사한 부분이 섬세하지 못하고 조잡하다.
솔직히 선입견 내지는 인종 차별적 언사일 수 있겠지만 이는 그들의 갈색 피부빛갈처럼 거무퇴퇴한 느낌이다.

밤새 달려온 피로를 벗삼아 눈을 붙였다.


밖이 환히 밝아왔다.
햇살이 저멀리 산을 비추고, 좁은 길을 따라 집들이 달라붙은 숲속 마을에 내려앉은 안개와 부딪혀
부연 흔적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대부분 일어났지만 아직 잠이 안깬 녀석, 그리고 목욕을 한다고 수건을 아랫도리에 걸치고 설치고 있는 놈들을 보자니
준비가 되려면 제법 시간이 필요할 듯 하여, 마을을 가로지르는 작은 길로 내려갔다.


얼마지나지 않은 크리스마스의 흔적들이 작은 집의 마당과 처마와
때로는 지붕을 장식하고 있었다.
이 마을은 드물게 크리스찬이 많은가 보다.


마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낯설은 피부색의 이방인을 자세히 살피더니 숙스러운지 눈을 피한다.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없어서 나도 눈을 피했다.
순박해 보이는 아낙들과 마주쳤다. 이번엔 눈을 피하지 않고 버텼다.
그리고 웃으며 '헬로우'라고 인사를 건넸다. 약간의 미소가 스치는 것을 곁눈으로 느끼며 지나치고는 다시 돌아보니 내가 지난 뒤 그들은 표정의 경직을 풀고 말건네는 이방인에 대한 얘기를 하는 듯 했다.
 
작은 마을을 잠시 돌아본 뒤,
동료들과 함께 근처의 폭포를 보러갔다.
폭포가 그냥 그러저러하게 볼만은 했지만 이거 하나 보러 오려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나 싶었다.


한 불교 사찰을 찾았다.
티벳불교와 같은 느낌을 주는 곳으로 인도의 남쪽에서도 이런 절이 있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중국여행할때 만났던 승려와 같은 붉은 낯빛의 어린 승려들도 이 곳에서는 많이 볼 수 있었다.

본전불을 모신 사당 내부를 둘러보고 나와 그앞 계단에 앉아 잠시 쉬었다.

 


서너명의 젊은이들이 내 앞에 앉았는데, 이들이 내 근처에서 사진을 찍는다.
점점 다른 사람들까지 모여들고, 내 앉은 곳으로 대열이 자꾸만 이동해 온다.
외계인을 보고 같이 사진찍자는 말건넬 용기도 없이
내가 앉은 곳으로 점점 다가오면서 은근슬적 나를 그들의 사진 대열에 함류하려 하는 속샘이 뻔했다.

그들의 용기없음에 조금 도움을 주려고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친구들인가"
"그렇다. 같은 칼리지의 친구들이다."
그러고부터 조금 자신이 생겼는지 용감한 녀석부터 나를 보면서 말을 걸고 시비하기 시작한다.


내가 마음에 들어할 수준의 예쁜 여학생은 저 멀리서 슬쩍슬쩍 처다보기만 한다.
그녀에게 손짓으로 '와서 같이 사진 찍자'는 표현을 했지만
숙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주저주저하며 돌아선다.

절 주변을 걷다가 다른 친구와 함께 걷던 그 여학생과 다시 마주쳤다.
주변이 덜 의식되는지 나를 보고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
순간 그 미소에 반해 숨이 멎었는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다. 그녀는 친구와 함께 가던 길을 계속갔다.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술과 음식을 배달해왔다.
오늘은 그믐날.
그들도 새해 첫날을 맞는 설레임에 들떠 있었다.
바닥에, 침대에, 혹은 의자에, 각자 앉고 싶은 자리에 앉아
자기가 즐기는 술, 위스키 혹은 맥주를 마셨다.
술에 취한 녀석은 음악이 없는데도 온 뼈마디를 뒤틀만한
격렬한 춤을 추어댔다.
피어오르는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마구 뿜어내는 것이 춤인가 보다.


일찍부터 시작된 술자리이고,
어제부터 시작된 여행의 피로가 쌓인 때문인지
일찍 자리를 피해 옆방으로 와서 잠을 청했다.


얼마간 잠들었을까 갑자기 방이 환해지고 녀석들이 들이닥친다.
"해피뉴이어"
신년인사를 나누기 위해서 잠을깨운것이다.
침대에서 일어나 한사람 한사람 악수를 하며 신년인사를 나눈다.
녀석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다.
다들 자기만의 독특한 인사말을 만들어 내려고 고심한다.
"새해에는 건강하고 모든 축복을 받고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시길 빕니다. "
나는 그냥 웃어주고 안아준다.


새해 아침이다.
어제와같이 동쪽에서부터 안개를 뚫고 아침을 여는 햇살이
이 곳 산속마을의 생활을 동경하게 만든다.


정초 아침을 그냥 우두커니 서서 맞는 것을 참을 수 없어서
 오늘은 좀더 멀리 걸어 보리라 마음먹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산책을 나섰다.
끊어질 것만 같은 길이 산의 능선을 따라 계속이어진다.
간혹 호기심에 끌려 빗겨난 샛길을 따라가 보면 정말 거짓말같이 숲에 싸인 가옥들이 나온다.
 
한 마을을 지날때 저 아래로 길게 이어진 길을 바라보다가
정말 그 곳으로 가지 않고는 못배길 거 같아 길을 따라 내려갔다.
왼쪽으로는 숲, 오른쪽으로는 나무울타리가 이어지는데 울타리가 끊어진 곳마다 집들이
단형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소박하지만 그러하기에 아름다운, 정말 살아보고 싶은 곳이었다.
어느집은 길게 숲길로 이뤄진 골목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어느집은 자연산 바나나가 마당에 주렁주렁 열려 있기도 했다.


길모퉁이를 돌아서자 한 아낙이 방문앞에 서 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눈매가 강렬한 이국적인 매력을 지닌 여인이다.
눈이 마주치자 내가 먼저 인사했다. "해피 뉴 이어"
그녀도 화답했다. "해피 뉴 이어"
대문바깥편에서서 그녀의 매력에 빠져 어설프게 마냥 서있다가는
치한으로 오해 받을 것만 같아 다시 길을 걸었다.

마당에서는 커피를 말리고 있는 집을 지나 그 예쁜 마을을 빠져나왔다.


그날 낮엔 작은 포트를 구경하고,
코끼리가 노는 물에서 래프팅을 즐기고 멱을 감고
맛있는 인도 요리를 먹으며 하루를 보냈다.


코르그에는 뭔가 멋진것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별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숲속의 작고 아름다운 마을, 소박하지만 누구나 예쁘게 꾸미고
살아가는 아름다운 마을을 보게된 것만으로 왕복 열 두 시간 여행에 대한
댓가로 충분했다.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롱이 실종 5일째  (0) 2020.12.08
밀수에 가담할 뻔...  (0) 2018.08.16
중국여행-시안  (0) 2017.07.16
중국여행-다시 란저우로  (0) 2017.07.16
중국여행 -짜가나 마을  (0) 2017.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