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중국여행-시안

아르쎄 2017. 7. 16. 15:48

시안역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가 있었다.
역사를 나가지 못하고 입구에서 내리는 비와 맞은편의 성벽을 한참 쳐다보다가,
입구에서 파는 싸구려 우산을 하나 샀다.


일단 어디든 가서 무엇을 할지 고민해야 했기에 맞은 편의 맥도날드 햄버거 점으로 가서 햄버거를 하나 시켰다. 우산은 있으나마나 배낭은 이미 윗부분이 상당히 젖어 있었다.

숙소의 체크인 시간은 오후이니
시안에 와서 당연히 가야할 삥마용을 먼저 다녀온 후 무거운 베낭을 숙소에 맞기고 시안 시내를 둘러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병마용행을 가기위해 2층버스인 603번 버스를 탔다.
근데 버스안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이상하단 생각이 들어서 메모해둔 쪽지를 꺼내봤다. 실수였다.
병마용행 버스는 603번이 아닌 306번이다.
603번은, 예약해둔 숙소가 있는 남문으로 가는 차였다. 번호가 서로 대칭이다 보니 헷갈린 것이다.
할 수 없이 일정을 변경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거 숙소에 먼저가서 무거운 베낭부터 내려놓기로 했다.


숙소는 남문에서 수화문 골목쪽으로 들어가 있는 게스트 하우스였다.
체크인 시간이 오후라고 되어 있었고 아직 여전히 오전이었지만 카운터의 아가씨가 체크인이 가능하다고 했다.
내여권을 보고는 한국말로 말도 안되는 한국어 흉내를 내기에 그냥 씩 웃어줬다.
네개의 침대가 들어 서 있는, 조금 좁긴 했지만 깔끔하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고 있는 방이었다. 

베낭을 내려고 굽굽해진 옷은 꺼내서 침대벽면의 옷걸이에 걸어놓고 카운터로 내려왔다.
병마용 가는 방향을 물었더니 버스를 타려면 북문, 즉 시안역으로 가서 306번 버스를 타라는 것이다.
이런 비효율이 있나.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서 첨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시내를 벗어나 한참을 가니 양귀비가 놀았다던 화청지를 지나 병마용 주차장이 나왔다.
버스안의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곳에서 내렸다.
병마용 입구까지 식당과 상점들이 늘어서 있어서 왠만한 쇼핑은 이 곳에서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방료값가 제법 비싸다. 비싼 입장료 내고 들어가서 좋았던 적 없었지만 이 곳은 생애 한번쯤은 들어가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기에 아깝지만 150위안의 표를 끊고 안으로 들어갔다.


중국인 가이드 들이 여기 저기서 붙잡았지만
나레이션까지 구태여 듣고 싶진 않았고 듣고 싶다 한들 한국어 할 줄 아는 가이드가 없으니 내게는 소용이 없다.
 
조경이 된 보행로를 통해 걸어들어가는데 서양애가 혼자서 팔을 뻗어 셀카를 찍고 있었다.
길게 팔을 뻗어 몇번씩 찍는 게 어렵게 보여 도와 줬더니 나를 쫓아오며 인사를 했다.
캐나다인이고 이름이 파블로, 파블로 피카소와 같은 이름이고, 자기도 전에는 화가 였는데,
지금은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영어도 가리치고 다른 잡일도 하면서 대충 산다고 했다.

동남아와 일본까지 가봤는데 한국은 아직 가보지 않았고 구체적인 계획도 없다 했다.
서양애들이 인식하는 한국을 대충 알 거 같았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고 멀어서 마땅히 여행하기도 번거로운 나라 정도로...
작은 나라이지만 즐길것도 갈 만한 곳도 좋은 산도 많다는 설명을 해줬지만 이에 자극받아 한국을 방문할 거 같지는 않아 보였다.


1번 갱도 입구로 들어가자 병마용 병사와 말의 미니어쳐를 팔고 있었다. 파블로는 여기에 관심을 기울이며 시간을 쓰고 있길래 나오면서 사자는 말에 동의하며 나를 따라 안으로 들어왔다.


넓게 펼쳐진 1번 갱의 모습. 다른 이들은 감동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역사적 이해가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사진과 영화에서 워낙 많이 봐서이미 기대 수준이 실재를 넘어서고 있어서인지 내겐 뭐 그다지 감동적이진 않았던 것 같았다.


불과 15년 정도 밖에 안되는 통치기간 동안, 사후 세계에 대비코자 이런 병마용을 만들고, 만리장성을 축조하고 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괴롭힘을 당했을까하는 안타까운 생각과 수 천년 전 중국최초 통일 왕국의 숨결이 담긴이 담긴 유물을 마주하고 있다는 감동(?)이 겹쳐서 일었다.



파블로는 육안으로 감상하는 것 보다는 사진을 찍는 데 집중했다. 병마용을 배경으로 자신의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는데 요구하는 구도가 무척까다로왔다.
더군다나 사진의 영역에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면 싸가지없게 밀치기 까지 했다. 


1번 갱을 나오자 아까 팔던 병마용 미니어쳐가 사라지고 없었다. 팔던 미니어쳐를 이미 정리해서 철수 했다는 것이다.
파블로는 관리직원에게 투정을 부렸다. 관리 직원이 시내에도 많이 판다고 했지만
이 녀석은 펄쩍벌쩍 뛰면서 도대체 어디서 파냐, 구체적으로 얘기해달라는 둥 따지고 든다.
아까부터 이 파블로 녀석이 별로 마음에 안들고 있는 중아다. 같이 안다니고 싶은데 어떻게 떼어 놓는담...
 
한참 그에게 시달리던 관리 직원이 영내 다른 곳의 파는 곳을 설명해 준다.
'난 2번 갱으로 미리 가있을테니 가서 사오면 그곳에서 만자라'라고 했다. 그 녀석이 나를 잡는다. 금방 다녀올테니 들어가지 말고 입구에서 기다려 달라나.
중국에서 영어가 쉽게 통하지 않아 의사소통도 답답하니 어설픈 중국어나마 할 수 있는 나랑 같이 다니는게 좋았나 보다.
나는 얼른 동의하는 듯한 대답하고는 2번갱이 아닌 진시황 박물관으로 먼저 들어갔다. 녀석을 따돌려야 좀 자유로워 질 듯 했다.

2번갱, 3번갱도 둘러 보았지만 1번갱을 보고 이미 눈을 키워 버린 나같은 범인들로서는 그 규모와 보존의 정도가 이미 눈에차지 않는다.
하지만 2번갱과 3번 갱은 그 용도와 등장인물 등에서 차이가 난다는 사실에 유념하며 관람할 필요가 있다.


병마용을 보고 숙소 근처 남문으로 와서 성벽에 올랐다.
공연관람을 포함하는 표가 있었는데, 그 규모와 완성도에 대해서는 익히 들었지만 혼자 여행다니면서
그런 럭셔리한 공연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병마용에서도 느꼈지만 입장료 많이 지불한데 치고는 그 값어치 만큼 마음에 남을 만한 곳을 겪어보지 못했다.
성벽은 시안 중심시내를 크게 사각으로 둘러치고 있어 시안 시내를 관람하기에 적격이다. 하지만 그 길이가 원채 길어 걸어서 일주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성벽위에 자전거 빌려주려 주는 곳이 있는데 결코 싼 가격이 아니었지만 걸어서 관람하는 것보다는 효율적일 것 같았다.



어둠이 내리고 성벽위의 기와 지붕으로 된 망루에 불이 들어오자 예쁜 야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숙소에 들러, 오전에 내린 비를 맞아 축축해진 신발을  침대아래 벗어두고 숙소 슬리퍼를 몰래 신고 내왔다.
웨이신 지도만 의지해서 회족 거리를 찾아 나섰다.
남문에서 북쪽으로 쭉 직진하면 오래 걸리지 않을 거 같아 방향을 잡고 걸었다.

가는 길에 불켜진 종루를 지나갔는데, 건물 주위로 새떼가 연신 맴돌고 있었다.


회족거리 초입의 고루가 있는 사거리 쇼핑몰 지하광장 부터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드디어 회족거리.
길 양쪽으로 온갖 먹거리가 즐비하다.
먼적 양고기 꼬치를 먹어본다. 맛있다.
오징어 꼬치도 있다.  원재료가 어디서 온것인지 물어보니 청도에서 부터 온다고 했다.









터지지도 않는 그놈의 데이터로밍을 괜히 했다고 후회를 많이 했었는데,
시안에서는 시내라서 그런지 인터넷이 가능했다.
회족거리의 음식을 즐기며SNS를 통해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자랑질을 했다.
혼자하는 여행의 유일한 단점인 외로움을 SNS를 통해 해소하고 다른 이와 공감하는 거, 괜찮은 거 같다.
물론 저 편에서 괜히 '좋아요' 찍어주고 의무감으로 댓글 다는 것도 피곤한 일일테지만 말이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숙소로 돌아왔다.

나와 같은 방을 쓰는 세친구 모두 중국 한족이었지만 사는 곳은 모두 달랐다.
중국의 서쪽인 총칭(중경)에서온 양시아오하오, 동쪽끝인 지린성 장춘 출신으로 현재 북경대학에 다니고 있는 장하오, 대만에서 가까운 푸저우에서 온 쉬엔한팅.
중국에 내접하는 가장큰 삼각형을 그릴 경우  세 꼴지점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서로 멀리 덜어진 동네이다.
비록 나만 국적이 다르긴 했지만 모두는 서로 완전히 다른 곳에서 살아왔던 터라
각지방에 대한 문화와 사회상 등에 대한 것들을 묻고 얘기하며 깊은 밤을 보냈다.


나에게 한국에 대해서 미국의 꼬봉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맞다, 한국은 작은 나라라서 국제 관계속에서 그렇게 적당한 스탠스를 취하지 않을 수없다. 알다시피 한때는 중국의 꼬봉이었던 적도 있지 않았나'고 반문했다.


중국과 미국 중 어디랑 더 친하냐?라고 물어왔다.
'표면적으로 미국과 친하다. 하지만 중국에 대해서 가까워야 한다는 시각이 많으며,
내 생각에도  중국과 가깝게 지내는 것이 오히려 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대답했다.


푸저우에 있는 쉬엔한팅에게 내가 물었다. 대만과 중국의 자유왕래가 가능하냐고.
그는 가능하다고 했고 중국은 대만을 국가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지역으로 생각한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조선(북한)은 왕래가 불가능한 거냐고 오히려 의아해 하며 물엇다.
한국과 북한의 관계를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심각한지는 잘 모르는 듯,

그들은 대만과 중국의 관계정도로 한국과 북한의 관계를 알고 있었던 듯 하다.

 

과거 박근혜가 친중국적인 행복를 보인데 대해 중국정부가 박근혜를 크게 띄워서인지,
이들 모두도 박근혜를 알고 있었다.
중국과의 관계를 순식간에 버리고 친미, 친일로 돌아서면서 사드 배치에 앞장선 박근혜를 보면서
중국은 무엇을 느꼈을까?
어쩌면 이후에 어떤 지도자가 친중국적 제스쳐를 취한다 해도 한국 인간들 믿을 게 없다라고 생각하며
쉽게 그와 같은 관계를 다시 만들어 내기가 어렵지  않을까 우려되었다.


그들이 모르는 박근혜 아버지에 대한 얘기와 더불어 한국에는 그보다 훨씬 훌륭한 지도자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박근혜를 통해서 한국을 이해하질 않길 바라면서.


내일 이른 비행기를 타야 했기에 새벽1시전에 잠자리에 들려고 했지만
얘기를 나누는 중 시간은 벌써 새벽 4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다들 내일 일정을 위해 소등하는데 동의했지만 못다한 얘기들이 아쉬웠던지 불을 끄고도 한동안 얘기가 이어졌다.


여행의 진정한 묘미는 유명 관광지, 명승지 방문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 인연을 맺고 그곳의 문화를 체험하는 데에 있는 것이라는
나의 지론을 다시 확인하는 좋은 밤이었다.



덧붙임. 

얘기하는 동안 수신된 웨이신을 확인했다.
준이 오늘 시안 여행을 했다고 사진과 함께 보내왔다.
성벽 망루의 야경사진, 회족거리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이런 우연이 있나! 그녀의 동선이 나와 완전 일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난 다음날 새벽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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