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건설현장에 온 관광버스

아르쎄 2017. 4. 20. 23:34

현장에 버스가 한대 들어왔다.


웬버스지?


차 뒷편으로부터 밝은 봄낮의 풍경이
어두운 차안을 관통하여 내 눈에 들어왔다.

그 명암의 대비가 만들어지는 실루엣을 통하여
나는 차안의 형상을 서서히 구체적인 모습으로 그릴수 있었다.


축쳐진 어깨 앞으로
휘어진 등허리의 곡선을 따라 힘없이 앞으로 내밀고 있는 얼굴.


노인들이었다.


관광버스 안의 노인들.

궁핍한 생활이지만 도리를 다하고자하는 자식들의 싸구려 효도관광?
아니면 노인정의 어르신들을 꼬드긴 장사치들의 선심성 쇼핑관광?
 
하지만 그리보이지 않는 것은
관광버스와

그에 어울리지 않는 암울한 느낌의 허리휜 노인들.


얼마지나지 않아 난
그 버스에 써진 무슨무슨 조경이란 글자를 통해
그 분들이 현장에 일을 하러오신 분들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힘들게 키워 준 자식들에게 외면받고
젊은 날의 화려한 노동의 가치로부터도 버림받은 그들은,


회피하고 외면하려 해도 더는 물러설 수 없는
이 처절한 생존을 위해서

오늘도 버스에 올랐을 것이다.


누군가의 소중한 사랑의 씨앗으로 태어났을 것이고,
아름다운 삶을 꿈꾸었을 사춘기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보다나은 미래를 기약하며 뛰었을 젊은 날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품으려 하지 않는
쭈그러진 껍데기만 남아

싼품에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거친 일자리를 찾아
호미질 하며, 패여진 주름을 더 깊게 파는 일이,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으니 돌인들 무거울까
늙기도 서러운데 짐조차 지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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