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하늘 아래 첫동네 '레(Leh)'방문기

아르쎄 2015. 12. 21. 23:37

인도를 다녀온지는 아직 1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아득한 기억인 듯 가물거린다. 멀어져 가는 레(Leh)의 추억이 더 이상 불필요한 기억으로 정리되어 사라지기 전에 내 기억을 정리코자 한다.

 

내가 인도를 떠나온 날이 2015년4월23일 이었으니 아마 내가 Leh로 가던 날은 17일 아침이었던 듯 하다.
더 많은 날들을 히말라야의 옛왕국에서 머물고 싶었지만, 나의 그런 갈망을 조직에선 허용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토록 오랫동안 원했던 레 여행을 난 짧지만 놓칠 수 없는 마지막 여행으로 계획했다.

 

델리의 인디라간디 공항을 떠나 레 왕국으로의 가는 여정은 히말라야 산맥을 가로 지르는 것이 장관이다.
인도의 드넓은 평원을 지나면 어느덧 높은 산맥이 솟아나고 산맥을 따라 한참을 날아가면 하얗게 솟아오른 설산이 나타난다.
함께 비행기에 타고 있던 많은 이들이 창밖을 내다본다.
눈이 부시지만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이 멋진 장관을 위해 나도 창밖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처음에는 산 꼭데기만 희다가 조금 더 가면 온 세상이 희어진다. 
거칠게 이어지는 능선도 보이고 얼어붙은 계곡도 보인다.

절대 사람이 닿을 수 없는 세상이다.
중국의 백만 군대이든, 투르크제국의 용맹한 군대이든 옛날 이 곳은 그 어느 누구도 닿을 수가 없었던 만큼 신성하게 여겨질 만한 곳임이 분명하다.

침략자의 입장에서는 군량을 나를 길도 없고, 추위를 피할 곳도 없다. 
하늘을 날으는 교통 수단을 갖게된 오늘에서나 이를 수 있는 곳이다.

 

인도에서 신성시 되는 '강가' 즉 갠지즈 강은 히말라야 깊은 곳으로 부터 발원한다.
인간이 닿을 수 없는 곳이기에 인도인들은 이 강의 발원을 수미산 즉 신이 사는 산인 천상으로부터라고 믿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먼 엣날 인도에 엄청난 가뭄이 있었다. 사람들은 신(시바)에게 물을 내려줄 것을 기원했는데,
 천상의 강물을 내려 주게 되면 그 엄청난 양의 물로 인해 인간 세상은 큰 재앙이 날 것을 우려한 시바는자신의 머릿카락을 통해 천상의 강물을 인간세상으로 흘려보내게 되었다고 한다.

 

천상으로부터 온 물이니 그들이 신성시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내가 아는 한 젊은 인도친구조차 갠지즈 강에 목욕하면 모든 병이 다 낫는다고 나한테 정말 그렇게 믿는 듯 말한 적이 있다.

그 끝없이 이어진 설산을 따라 가니 조금씩 눈이 쌓이지 않은 곳이 보이기 시작하고 인간의 흔적인 듯한 길도 보였다.
길을 따라 이국적으로 들어선 집들도 보인다.
조금 더 가니 설산에 둘러싸인 작은 민가와 마을이 보이는가 싶더니 제법 규모가 되는 도시가 보인다. 레 왕국이다.

 

레는 과거 티벳의 속국이었다가 독립한 라디크 왕국의 수도였으나,
현재는 인도에 속해있는 나라이다.
티벳은 오랫동안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을 유지하다가
이제는 중국으로, 인도로 속해지고 이제는 인도땅 맥로드간즈에 달라이 라마를 정신적 지도자로 삼아
임시정부를 만들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비행기가 눈이 쌓이지 않은 비교적 낮은 산을 아슬아슬하게 돌아 공항 활주로를 타고 내린다.
델리에서 떠날 때는 벌써 한국의 여름과 같은 더운 날씨였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경찰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의 옷차림으로 본토와는 차이가 있는 이곳의 기온을 예측할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차가운 외기를 느끼며 옷깃을 여미어야 했다.

 

공항은 마치 시골의 버스 터미널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공항 청사를 빠져 나오자 많은 많은 택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 짚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걸어서 갈까 생각하다가
한시간여를 걸어가야 된다는 말에, 택시를 잡아 탔다.


택시기사는 호텔에 데려다 준다고 했지만 난 일단 오토바이를 렌탈할 수 있는 가게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택시를 타고 가니 머잖아 사람들이 붐비는 시장이 나왔고 기사는 시내를 지나쳐 인적이 드문 시골길로 들어갔다.
여기저기 민박집이니 호텔 따위가 보였다.

 

바이크 샵(오토바이 가게)로 가는게 아니냐고 따져 물었더니
택시기사는 '먼저 호텔로 가는게 어떻겠냐'고 반문하는 것이었다.
난 화를 내면서 당장 바이크 샾으로 돌리라고 말했고, 가는 길에 화가 나서 세워달라고 하고는 차비도 내지않고 그냥 내려버렸다.


택시기사는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이며 미안하다는 표시를 했지만 난 그를 무시했다.
관광객들을 불편하게 유인하고 이익을 추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으로 여겨 그렇게 대했는데,
나중에, 레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세속적이지 않음을 알게되고 내가 오해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뭏든 그렇게 걷다가 우연히 바이크샵을 발견했고
친절한 직원을 통해 불렛(로얄엔필드) 250cc를 빌렸다.

 

시내를 돌다가 작은 레스토랑에 들렀다.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현재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데에 대한 보상이 필요했다.
다행히 티벳 음식은 인도 음식과는 달리, 친근한 그들의 생김처럼 대략 우리 입맛에 맞았다.

 

식사를 하고 불렛을 타고 달렸다.
시내 뒤쪽으로 달리니, 언덕위에 나부끼는 타르쵸위에 작은 절(?) 같은게 보였다. '남갈체모'였다.
트르초에 이끌려 불렛을 타고 언덕을 올랐다.


컨디션이 별로였다.

레는 인간이 사는 도시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해발 3500m의 도시이다.
고지에 적응할 틈도 없이 오전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 오토바이를 타고 이곳에서도 두번가라면 서러울 높이의 고지에 올른 것이다.

 

저 산아래 걸어서 올라오는 몇명이 보였다.
아득해 보인다. 나보고 그들처럼 아래서부터 걸어오라고 한다면 그럴 자신이 없었다.

오토바이를 주차하고 체모에 오른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숨이 까쁘고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 같았다.

고산병을 인식하여 걸음을 천천히 내딛으며 의식적으로 호흡을 더 크게 했다.
오르다가 사진을 찍고 있는 중국 남자를 만났다. 비슷한 얼굴이 반가워 서로 인사했다.

 

다시 내려와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와 반대쪽으로 달렸다.
아스팔트 길은 설산으로 이어져 있었다.
5월부터 뚫어진다는 로탕패스인 듯 한데, 아직은 지나는 차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미개통임을 알 수 있었다.

 

도시와 멀어질수록 기온이 자꾸만 내려가는 거 같았다. 
메고있던 베낭안에 챙겨온 가죽잠바를 꺼내어 패딩위에 겹으로 입었으나 추위는 여전했다.

하지만 길을 따라 올라가면 곧 설산에 쌓인 희말라야의 눈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불탔다.

길은 불모의 산을 따라 지그재그로 높게 이어져 있었다.

 

'운전부주의로 굴러 떨어지는 날엔 ...'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선 그 흔한 보다폰이 통하지 않았다. 전화기도 먹통인데 만일 사고가 난다면 구조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동안 지나는 차 뿐만 아니라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도 않았으니.

결국 희말라야 설산의 눈을 포기하고 방향을 틀어 돌아내려왔다.
그냥 내려오는 것이 못내 아쉬워 비포장 도로를 달리다 넘어지기도 했다.

 

몸이 자꾸만 이상해져 갔다.
고산병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머리가 점점 어지러워졌고 편하게 쉬고 싶었다.

하지만 레에 있는 시간은 유한한 것이라 이런 몸을 이끌고도, 오는 길에 높은 곳에 생긴모양 탓에 인상적으로 보이는 원형 절에 들렀다.

산티스곰파라는 일본절이다. 한단한단 올라가면 탑을 한바퀴 도는 원형의 테라스가 있는 수개의 층으로 된 탑형이었다.
의식적으로 호흡을 크게 해 보았지만 이미 난 제 정신이 아니었다.
어디라도 가서 쉬고 싶었다.

불렛에 처음 앉았을 때, 레를 벗어나 판공초까지 가서 근처의 아무 민가라도 두들겨 민박을 해보고자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오늘은 더이상의 일정을 접어야 할것 같다.

 

내려와서 호텔을 찾았다.
아무곳에로라도 들어가 쉬고 싶었다. 방을 몇군데 둘러보는 것조차 너무 힘들어 간단히 흥정을 끝내고 방으로 들어갔다.
어지러웠고 곧 두통이 밀려왔다.
이른 저녁이지만 모든 걸 포기하고 침대에 누웠다.

 

다음날 아침은 회복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머리가 더 아파왔다.
호텔에서 와이파이를 제공하고 있어서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검색할 수 있었다.
네팔에서 고산병으로 한국인 가이드가 사망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도저히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지만
점심때쯤 사력을 다해 일어나 병원을 찾았다.
2층의 병원입구에는 주민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차례를 기다리기는 너무 힘들다.
약국이 보였다. 그리로 들어갔다. 증세를 말하고는 약사로부터 약을 처방받았다.

 

약을 먹고 침대에 누워 한참의 시간을 보내니 어느 정도 일어날 의욕이 생겼다.
벌써 4시가 가까워 오고 있었지만
레에서의 시간을 그냥 그렇게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불렛에 올랐다.

약기운 때문인지 솜털의 작은 움직임이 느껴지는 듯
피부가 간질간질 했다.

 

그리고 시내를 벗어나 어제와는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달리기 좋은 길이었다.
멀리 설산이 보이고, 지나는 차들이 뜸해졌다.

한참을 가다보니, 궁이 하나 나왔다.

그 이국적임에 이끌려 올라가 보았다.
밑에서 보는 것처럼 그다지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그 옛날 라다크 왕족이 되어 마을 아래를 내려다 볼 수가 있어서 좋았다.

 

궁의 저 위에는 곰파가 있었다.
고산병을 의식하며 산을 한바퀴 돌아 천천히 한단한단 정상으로 올랐다.

타르쵸가 만장기 처럼 세찬 히말라야의 바람에 흔날린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이곳에서 머물고 싶다.
저 아래 궁에 누군가가 기거하는 듯 한데, 노크하여 며칠 묵어갈 수 없겠냐고 허락을 구하고 싶었지만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하고 궁을 내려와 또다시 달린다.

비행기로 내려다보던 이국적인 동네를 직접 지상에서 달린다.
 
다리를 건넌다.
아래에는 저 산위에서 내려오는 물이 제법 거칠게 흐르고 있다.
강가과 더불어 신성시 되는, 인도의 문명을 낳은 또 하나의 강, 인더스이다.

 

히말라야의 거친 산맥과 이상적인 기후가 만들어진 오묘한 풍광을 느끼며
저멀리 다가오는 어움을 마주하며 달렸다.

 

밤이 되자, 밤거리를 혼자 걸었다.
레에서의 밤 하늘은 말로 듣던 그대로였다.

하늘 아래 인간이 사는 가장 높은 동네.
레에서의 마지막 밤은 고산병의 고통에 보낸 어제밤과는 달리
며칠 남지않은 인도와의 이별을 생각하며 우수에 젖에 잠을 설친 듯 하다.

 

다음날 그동안 사랑했던 불렛을 반납했다.
그저께 비포장길을 달리다 넘어져 약간 상한 곳에 대해서 변상이라도 하고자 했더니,
'노 프라블럼'이란다.
많은 관광객들을 상대해 왔을 테지만 그들은 친절하고 정직했다.

돌아온는 비행기안에서, 올 때처럼 저아래 하앟게 펼쳐진 히말라야의 설산을 바라보며,
기약할 수 없지만 분명 다시 찾을 거라는 약속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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