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아이들과 함께한 다즐링에서 델리까지.

아르쎄 2015. 2. 8. 04:26

 

 

15일 저녁에 비행장에서 너희를 만났고, 함께 사켓몰이라는 쇼핑몰에 있는 식당인 칠리칠리에서 저녁을 먹었지. 아빠와 함께 온 기사 아저씨와 함께.

그때 산아는 내내 몸이 안좋아서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서도 별로 먹지 못했었지.

밥을 먹고 우리는 델리역 앞에 있는 빠하르간지라는 지역에 있는 작은 호텔 피오르코에 들어와서 하루밤을 보냈었지. 그 때 그 호텔에는 몇몇의 한국사람들이 있었던 거 기억하겠지?.

 

다음날 아침에 호텔에서 식사를 했었지. 아마 너희들에게는 처음 경험해 보는 인도음식이었을 거야. 식사를 하고는 빠하르간지를 둘러봤지. 솔찬이가 과일을 먹고싶다고 했었던가.

결국은 과일을 사지는 못했던거 같다.

 

첫 여행지로 떠나는 기차 시간이 오후 1 55분 이었나?

암튼 오전에 시간이 남아 우리는 레드포트로 갔었지. 레드포트에서 어떤 인도 여자애가 와서 사진을 찍자고 해서 함께 사진도 찍었었지.

레드포트 보다 니네가 관심이 있었던 건 그 안에 살던 다람쥐가 아니었나 싶다. 니네는 다람쥐를 유인하기 위해 손을 뻗었고 순진한 다람쥐 몇 마리는 너희들과 아주 가까이서 조우했었지.

 

레드포트에서 나와서 찬드니촉시장을 잠시 구경하다가 맥도날드에서 시장끼를 떼우고 그 곳에 갔던 대로 오토릭샤를 타고 호텔로 다시 돌아왔었지.

 

열차시간에 쫓겨 호텔에 맡겨놨던 짐을 찾아 다급하게 뉴델리역으로 가서 기차를 탔었지. 우리만 한방에서 따로 갈 수 있는 나름 고급의 first class 등급의 열차를 타고.

 

근데 그곳에서 솔찬이가 핸드폰을 잃어 버린 걸 알게 되었어. 안타까웠지만 방법이 없었지.

뉴델리역에서 뉴잘패구리까지 가는 길은 무려 20시간 50분이나 걸리는 거리였지만 계속해서 나오는 식사며 간식거리, 그리고 편안한 잠자리 덕에 우린 별로 지루하지만은 않았던 거 같다.

 

그렇게 16일 밤은 기차에서 보냈고 우린 다음날 17일 오전 10 45분에 뉴잘패구리역에 도착했었지. 기차역에서 나오기도 전부터 짚차 기사아저씨가 자기차를 타라며 따라 붙었고, 역을 나오자 수많은 짚차 아저씨들이 우리 주위를 애워쌌었지.

나름 흥정끝에 우린 한 아저씨를 선택했고 그 아저씨가 우리를 다즐링까지 태워주었어. 그 때 그 아저씨와 흥정한 가격이 2000루피었던거 같다. 

출발하기 전 짚차아저씨들에 둘러싸였을 때부터 귀찮게 따라붙던 구걸하던 아주머니에게 작은 돈을 쥐어주었던 것도 기억나는구나.

 

실리구리라는 시내는 자동차가 엄청났어. 도시를 빠져나올때까지 우린 차량들이 뿜어대는 매연속에서 제법 오랜 시간을 보냈던 거 같다. 시내를 빠져나와 한적한 곳에 이르자, 솔찬이는 그렇게 보고싶어하던 원숭이를 스쳐볼 수 있었지.

어느새 평지가 큰 산으로 막혔었지. 짚차는 꾸불꾸불 그 길을 한참을 올라갔지. 엄청 높이높이.

산꼭데기에서 처음만나는 큰 동네가 쿠셩이었었나? 동네가 보이는 곳에서 우리는 차에서 내려 잠깐 바람을 쐬었었지. 짚차 아저씨는 쿠셩 옆에 있는 작은 동네를 가리키며 그 곳에 자기 집이있다고 했어.

 

온통 산인데, 이산 저산 여기저기에 집들이 군데 군데 퍼져 있었고, 모두 길로 연결되어 있는 거 같았어. 쿠셩의 시내를 가로 질러 가는데 여기저기 과일을 파는 노점상과 사람들이 있는, 나름 붐비는 시장을 지나왔지. 사람들의 생김새도 우리와 아주 많이 닮은 얼굴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어.

 

산을 올라왔지만 산위 능선을 따라 꾸불꾸불 또 한참을 달렸지. 오는 길에 토이트레인의 철로가 우리 가는 길과 함께 같이 나란히 이어져있었어. 나중에 아빠가 다즐링에서 그 철로의 폭을 손뼘으로 재어보니 대충 60Cm 정도 되었던 거 같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쯤에 우리가 예약했던 다즐링의 호텔 브로드웨이라는 곳에 도착했지. 방은 3층에 있었는데, 밖엔 발코니도 있었어. 우린 일단 방에다 짐을 풀고 가져온 라면을 끓여 먹었지. 니네들이 인도음식에 맞지 않을 것을 우려해서 취사도구와 함께 준비하게끔 했던 것인데, 생각외로 너희들은 인도음식에 잘 적응했던 걸로 생각해.

 

라면을 먹고 호텔을 나와서 시장구경을 했었지. 해가 지기 전에 대충 산책을 하려고 나왔지만 어디가 어딘지 몰랐으니 대충 시장을 헤매다 들어왔는데, 언덕배기 호텔로 오르는 길이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좀 피곤했던 거 같다. 그리고 호텔에서 우리가 머무는 3층으로 올라갈 때는 약간의 식은 땀까지 난 거 같았어. 나만 그런줄 알았는데, 우리 모두는 올라가자 마자 바로 골아 떨어졌던 걸로 봐서 아마 약간의 고산병 증세가 있었던 거 같아. 사실 그 곳은 해발 2천미터가 넘는 고지대였거든.

 

이른 밤에 다시 깨어 솔찬이랑 야외 산책을 갔었지. 하늘의 별들이 유난히 많았고, 한국의 하늘에서 볼 수 있었던 카시오페이아 별자리도 볼 수 있었어.  아빠가 우연히 별똥별을 보게 되었는데 자기도 본다며 솔찬이는 내내 하늘을 쳐다보며 별똥별을 기다렸지만 결국은 보지 못했었지.

 

다음날 우리는 타이거언덕에서 일출을 봐야했기 때문에 일찍자야 했어. 다음날 아침 짚차를 예약해 뒀었거든. 생각보다는 아니었지만 다즐링은 좀 추웠어. 침낭을 가져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사실 호텔의 이불이 그리 깨끗한 거 같지 않았고, 보온이 잘 되는 것도 아니었거든.

 

아침에 우리는 4시반쯤에 출발해서 5시쯤 타이거 언덕에 도착했어. 일출을 한 두 번 봐온게 아닌 아빠로서는 일출를 보기 위해서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는 걸 미리 알았고, 너희들이 그 추위에 그 때까지 기다리는 게 무리라고 생각해서 입구에 다시 내려가 전망대 입장권을 끊으려고 했지만 너희들이 괜찮다고 말리는 탓에 그냥 견뎌 보기로 했지.

 

커피 아줌마가 좋은 자리를 안내해 주길래 그 보답으로 커피를 사 마셨는데, 커피맛이 우리가 마시던 커피맛하고는 차원이 달랐어. 아줌마한텐 미안했지만 우린 그 커피를 그냥 쏟아 버릴 수 밖에 없었어. 먼데 지평선으로 붉은 빛이 점점 그 세력을 넓혀가고 우린 그곳에만 집중해 있었는데, 우연히 다른 쪽을 보게 되었어.

 

바로 아주 가까이에 눈덮힌 히말라야가 있었던 거야. 해가 떠 오르기 전이었지만 그 산은 아주 높았으므로 우리보다 햇살을 더 빨리 받아볼 수 있었겠지. 그 산이 뭐냐 하면 이 세상에서 3번째로 높은 칸첸중가. 아빠 기억이 맞다면 그 산의 해발높이 8,596m. 그냥 보기에 우리가 있던 곳과 별차이가 없어 보였는데, 우리가 위치한 곳보다 4배나 더 높다는 게 실감나지 않았어. 가까이 보였지만 실제 거리는 그 만큼 멀었기 때문일테지.

 

아빠는 일출보다 그 산에 더 감동해서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렀었지.

그 왼쪽에는 멀어서 작아 보이긴 하지만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도 보였어.

 

해가 떠오르고 우리는 서둘러 그곳을 벗어났고, 일찍 일어나 추위에 떨었던 탓에 이미 지쳤었지. 하지만 솔찬이와 아빠는 오는 길에 전망대에 들러 다시 한번 칸첸중가를 보고 보았지.

 

7시반쯤엔가 호텔로 돌아와 우린 다시 덜잔 잠을 연장했지.

하지만 우리는 마냥 그곳에서 잘 수만은 없었어. 내일이면 그 곳을 떠나야 했거든.

9시 반쯤 다시 일어나 초라우스타라는 광장으로 갔어. 따뜻한 햇살을 쪼이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고, 관광객들을 상대로 말을 태워주고 돈 받는 사람도 있었어. 너희들한테 타고 싶으면 타라고 했지만 타지는 않았어. 초라우스타 오른쪽 뒤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갔고 길옆으로는 티벳트 아줌마들이 노점을 늘여놓고 예쁜 물건들을 팔고 있었고 그 길에서 저 멀리 멋진 풍경의 동네들을 볼 수 있었지. 정말 그림 같은 곳이었어.

 

어디로 갈까 하다가 동물원쪽으로 가보기로 했어. 가는 길에 길가 작은 까페에 들러 커피를 마셨었지. 그 곳 아줌마는 짜글짜글한 주름에 짙은 화장을 했었는데 웃는 인상이 좋았어. 커피를 함께 마시고 기념촬영까지 했었지. 그 가게에서 한국사람들이 남겨놓은 흔적을 볼 수 있었는데, 산아와 아빠도 그 곳에 우리의 흔적들을 더해놓고 나왔지. 언젠가 다시 오면 우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며.

 

우리는 나이팅게일 공원에 갔다가 내려와 동물원을 거쳐, 히말라야 등산학교에 갔었지. 그곳에서 히말라야의 등산기록과 각종 산악 장비들을 볼 수 있었지.

, 아빠가 동물원 매표소에서 표를 끊다가 그만 가이드 북을 놓고 왔던 거 기억나. 걱정했었는데그 곳 아저씨들이 친절하게도 아빠의 책을 잘 보관하고 있어서 다행이었지. 

 

다시 돌아오는 길에 솔찬이가 계속 머리와 가슴이 아프다고 했어. 산아는 그런 솔찬이가 미운지 투덜댔고. 하지만 솔찬이는 고산병 증세로 정말 힘들어 했던 거 같아.    

 

솔찬이가 많이 아팠지만 오는 길에서 만난 원숭이에게 먹이를 주면서 놀 때는 그 아픔을 잊고 잘 놀았던거 같애. 다들 착한 애들이었지만 나중에 성질 고약한 원숭이를 만나 산아가 약간 쫄았었지.

 

저녁에 아빠는 별이와 맥주한잔 마시고 싶어 했지만 솔찬이는 아파 누워 잠들어 있었고 산아는 솔찬이와 방에 남아있기 싫어했지.

 

그날 저녁 아빠는 혼자 나와서 내일 바라나시로 갈 표를 알아봐야 했어. 사실 여행을 준비할 때 다른 표들은 미리 예약을 할 수 있었지만 뉴잘패구리에서 바라나시행은 좋은 시간대에 열차가 있었지만 이상하게 예약이 되지 않았어. 그래서 뉴잘패구리역에 도착하자 마자 미리 돌아갈 열차표를 끊어 뒀어야 했는데, 아빠가 그만 다즐링으로 오기에 바빠서 그걸 깜빡 했었거든.

그리고 내일 아침에 다즐링에서 출발한다는 있다는 토이트레인도 태워줄 생각이었거든.

 

다즐링역으로 갔는데, 아쉽게도 이미 표끊는 창구는 닫힌 상태였어. 아빠가 한 발 늦었던 거지.

그래서 여행사 사무실에 몇군데 들렀어. 다즐링역 맞은 편의 한 여행사에서 도움을 받아 뉴잘패구리에서 파트나로 가는 열차를 구할 수 있었지. 파트나에서 바라나시로 가는 길은 열차는 많이 있고, 택시를 이용할 수도 있다길래 따로 표를 끊지 않았어. 하지만 그건 잘 못이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어. 파트나에서 바라나시로 가는 길에 우린 고물 택시를 탔었고,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길에 허비했었지.

 

다음날 아침 일찍 짐을 챙겨 8시가 못되에 다즐링역으로 나왔었지. 앞서 얘기한 그 여행사 아저씨가 가르쳐 준대로 8시에 출발하는 토이 트레인을 타기 위해서였지. 아빠는 그 열차를 타고 굼역까지 가서 굼에서 불교 사원들을 구경한 다음 짚차를 타고 가면 2시반엔가 있는 파트나행 열차에 늦지 않게 맞출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안타깝게도 8시에 출발한다던 토이트레인 열차는 취소되었지. 토이트레인을 타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어. 암튼 우린 아침밥을 챙겨먹고 천천히 다즐링을 나왔어. 그리고 왔던 길을 다시 되짚어 잘패구리역으로 돌아왔지.

 

그곳에서 기차를 타고 새벽에 파트나역에 도착했어. 파트나 역을 나와서 아까 얘기한 대로 택시를 구해 탔지 가격이 4천루피쯤했었던가. 여행사 아저씨 얘기로 3시간 반쯤 걸린다 했던 거 같은데, 우리가 바라나시에 도착한 건 거의 11시쯤 되었던 걸로 기억해. 무려 6시간여를 달려왔던 거였어. 그 차는 지붕이 둥그스름하게 생겼고 내부는 마치 오래된 트럭같이 낡아 있었는데, 운전석의 창문은 차가 달리면 자꾸 내려가 기사아저씨가 몇 번이고 손으로 잡아당겨 올려 놓고는 했었지. 니네들한테 침낭을 덮어주고 아빠는 한참을 추위에 떨었던 거 같아.

더 힘들었던 건 그 아저씨의 아주 불쾌한 행동. 킁킁하며 코를 들이마시고는 창문을 통해 그 더러운 코를 컥 내뱉는 소리는 정말 메스꺼웠더랬지.

 

바라나시에 도착하기 전부터 산아는 쉬가 마렵다고 했었지. 예약한 호텔인 템플 온 갠지스를 기사 아저씨가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아빠는 핸드폰으로 네비게이션을 켜고 안내를 했지. 근데 좁은 길로 한참을 돌아가더니 아저씨는 더 갈 수 없다고 하는거야. 축제가 있어서 길이 막혀있고 길이 좁아서 자전거 렉샤를 타고 가야한대.

산아는 쉬가 마렵다며 완전 울상이고 심지어 울기까지!

아빠는 다급해져서 주위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지. 사람들이 화장실이 어디있다며 가르쳐 줬지만 그런 곳을 찾아가기 전에 산아는 난리가 날 거 같았어.

그러자 한 아저씨가 바로 앞에 있는 여학교를 알려줬어. 산아를 데리고 아빠는 그 학교로 갔고 아빠는 들어갈 수 없어 산아 혼자 들어가서 볼일을 보고 나왔어. 근데 이상하게도 문제를 해결하고 나온 산아의 얼굴이 밝지가 않았어.

 

산아랑 나와서 아빠는 사람들에게 라가까페가 어디인지 물었지. 라가까페는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한국 여행객들에게 인기있는 곳으로 아빠가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던 곳이었지. 말이 잘 통하지 않아 처음에는 못 알아듣던 사람들이 지도를 보여주며 설명했더니 안다며 아주 가까운 곳이고 걸어가면 충분한 곳이라고 얘기해줬어. 그 중 한 사람이 자기가 안내해 줄 테니 100루피를 달라고 했어.

 

그 아저씨를 따라 가는데, 금방 갈 수 있을 거라던 라가까페는 나오지 않았어. 좁은 골목을 돌아돌아가면서 아저씨는 우리에게 이래저래 건물들과 골목길의 유서에 대해서 설명해 줬었지. 아빠는 계속해서 정말 라가까페로 가는 것인지 물었고, 그 아저씨는 문제 없다며 계속 앞장서 가면서 떠들어 댔어.

 

그렇게 한참을 따라가다가 갠지즈 강에까지 다다랐어. 산아는 언제부턴가부터 배가 아프다고 했는데, 이젠 안색도 별로 좋지 않았어. 사실 아까 화장실 다녀오고서도 안색이 좋지 않았던 건 이 때문이었던 것이지.

산아는 응가가 마렵다고 하지, 목적지는 언제 나올지 믿을 수 없었지, 용변 볼만한 데는 찾아질 거 같지 않지. 그 상황이 아빠를 화나게 했어. 아빠가 화를 내며 아저씨에게 라가까페를 알기나 하냐고 큰 소리로 몇 번을 물었지. 그랬더니 그 아저씨는 자신은 라가까페가 어딘지 모른다는 거야. 아빠는 너무 황당해서 아저씨에게 막 화를 내고 돈을 내 놓으라고 소리쳤지. 그 소리에 그 아저씨가 돈을 꺼내줬지만 아빠는 받지 않았어.

화가 무척나긴 했지만 그 아저씨가 나쁜 생각으로 우릴 이곳으로 안내한 거는 같지 않았거든. 그 아저씨는 우리에게 이곳저곳을 보여주며 설명해 주고 싶었던 걸 꺼야.

 

아무튼 아빠가 큰소리로 아저씨를 나무라는데, 그 아래서 어떤 사람들이 아빠가 라가까페라고 소리치는 걸 들은 모양이야. 그러면서 그곳을 안다며 설명해 주었지. 아빤 어찌나 다행이라 생각했었던지 몰라.

 

아무튼 그렇게 물어 물어서 결국 라가까페를 찾아갔어. 입구에서 한국말 잘하는 인도 아저씨가 우리에게 인사하며, “찾아 오시느라고 고생했어요. 여기 맞아요 라가까페.”라고 하는 거야. 어쩌면 우리의 마음을 그렇게 잘 알아맞혔는지.

 

산아는 결국 그렇게 화장실에서 시원하게 볼일을 볼 수 있었고 우린 오랜만에 한국음식을 먹게 되었지.

 

라가까페는 길에서 계단으로 한층을 올라가. 그러면 거기에는 주방이 있고 한층 더 올라가면 식사를 하며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지. 이러한 구조로 인해 밖에는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안은 조용했지.

 

안에서 몇 팀의 한국사람들이 이미 와 있었어. 한국의 식당에 온 거 같은 기분이었지. 매뉴판에서 참치김치찌개와 볶음밥과 정식을 시켜먹었어. 닭볶음을 먹고 싶었는데, 그건 닭을 사와야 하니 두시간 전에 주문을 해야된다고 해서 포기했지.

 

한국인 여자 사장님도 만났는데, 라가까페가 운영하는 민박집이 있다고 했어. ‘소나이스 게스트하우스라고 했나? 정확한 이름이 기억이 안나.

우린 호텔을 예약했지만 이곳이 가장 볼게 많은 골목이라 움직이기도 편하고 숙박료도 훨씬 저렴해서 호텔을 해약하고 게스트하우스에서 잘 생각을 했지. 그래서 식사 후 처음 우리를 맞이해준 그 아저씨랑 게스트 하우스에 갔었어.

게스트 하우스 로비 벽에는 한국인 여자 사장님이랑 우리와 함께온 아저씨 그리고 잘 모르는 인도아저씨 셋이서 찍힌 사진이 있었어. 그 아저씨의 설명을 통해서 그 여자사장님은 인도남자랑 결혼했고 우리랑 함께 온 아저씨는 그 여자장님의 남편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됐지.

 

묵을 방을 정하고 호텔을 해약하려 했는데, 문제가 생겼어. 호텔 해약이 안된다는 거야. 여사장님은 그 호텔이 그래도 더 깨끗하고 편할 테니 그 호텔로 가라고 했어.

라가까페 아저씨가 소개해준 보트를 타고 갠지즈 강(이곳 말로는 강가)을 건너 예약한 호텔이 있는 아시가트로 갔었지.

 

보트를 타고 메인 버닝가트와 메인가트 등 많은 가트 들을 지나갔지. 여행 온 듯한 인도사람들도 보트를 타고 지나가며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기도 했었지.

 

그렇게 배에서 내려 우리는 숙소인 탬플 온 갠지즈로 갔어. 우리 방은 맨 꼭데기층에 있었는데, 방이 썩 마음이 들지 않았지만 옥상 테라스를 사용할 수 있어서 좋았어.

그때 너희들은 옥상에서 밖을 내려다 보며 동네 꼬맹이들과 장난하느라 정신이 없었지.

 

짐을 대충 정리하고 밖에 나가려고 봤더니 너희들이 보이지 않는거야. 아래를 내려봤더니 니네들은 벌써 아래로 내려가 아이들과 놀고 있더군.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서로 마음으로 통하고 있다고 생각했어. 아니, 아이들만 그런게 아니지 아빠도 여행하면서 문화적 배경이 전혀 다른 이들과도 마음이 통한다는 것을 배웠으니까. 마음을 순수하게 가진다면 누구나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는 거 같아. 여자 아이가 산아에게 헤나를 해 주겠다고 했었던가.

 

호텔을 나와 우리는 배를 타고 왔던 길을 거슬러 걸어서 갔지. 가트로 말이야.

여러 가트 들을 지나면서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과 문화를 접할 수 있었지. 가트위에 누워있거나 걸어가는 많은 소들. 그리고 많은 개들. 건강한 개들도 많았지만 아픈 개들도 많았어. 피부병에 걸린 개들, 다리를 저는 개들. 마음이 따뜻한 우리 산아는 그 많은 애들 하나하나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했지. 모두에게 그 말을 전하느라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말야. 한국에서는 청계천 상가에서나 볼 수 있는 커다란 앵무새들도 이곳에선 여기저기 아주 쉽게 볼 수 있었어.

 

가트 아래에서는 찬물에 목욕을 하는 사람도 보였고 빨래하는 사람도 보였지. 그리고 버닝가트를 지날 땐 처음으로 죽은 사람을 보았고, 그 죽은 사람을 태우는 장면도 보았지. 그 장면을 보면서 아빠는 인도 사람들은 죽은 뒤 이곳에 와서 화장을 하면 다시 고달픈 삶으로 태어나지 않고 해탈한다고 믿는다고 알려주었지만 너희들은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거 같았어.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게 뭐가 좋냐며.

 

한 곳에서는 온 몸을 하얗게 칠하고 수행하는 사람들을 보았지. 모포 같은 걸 걸치고 있었는데, 아빠가 그 사람들한테 사진 찍어도 되냐며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그중 한 아저씨가 몸을 젖히고 벌떡 일어나 몸을 좌우로 흔들어 댔는데, 놀라운 것은 몸에 아무것도 안 걸치고 있더라는 거야. 더 놀라운 것은 거시기에 뭔가가 달려 있는데 몸을 흔드는데 따라서 그게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하는 거야. 그 아저씨는 머니, 머니라고 흥얼거렸는데 아무래도 사진찍으려면 돈을 달라는 뜻인 거 같아 아빠가 얼마냐고 물었지. 500루피라고 해서 아빤 사진을 안찍고 얼른 그냥 지나쳐 와 버렸었지.

 

메인가트에서는 한 아저씨가 아빠한테 악수를 청하며 다가왔었지. 아빠가 그 호의에 손을 내밀자 아빠 손을 마사지 하기 시작했어. 무료라고 하면서 잠시만 시간을 달라며 아빠를 한 곳에 앉혔어. 그러더니 또 한 사람이 달려 들어 같이 아빠를 마사지 했어. 결국 아빠는 그 사람들한테 돈을 줄 수밖에 없었지.

 

또 한 곳에는 여러 명이 둘러앉아 담배 같은 걸 피고 있는 장면을 보았지. 그 사람들은 마약이라고 한국말로 얘기했어. 아빠 보고 한번 피워보라는 뜻으로 한 거 같았어. 아빠는 그게 대마초라는 걸 짐작으로 알았지.

 

이래저리 오는 길에 살면서 처음 접하는 많은 것들을 마주했었지.

 

우리는 이곳에서 유명하다는 라씨를 먹으러 가기로 했어. 잘 알려진 곳으로 시원라씨집과 블루라씨집이 있는데, 둘 다 아까 그 라가까페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어.

, 아까 호텔에 도착했을 때, 아빠가 전화기를 라가까페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두고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전화를 걸어도 받지를 않는 거야. 그래서 가는 길에 라가까페에 들러서 혹시 아빠 전화기를 못 봤냐고 물었지만 아까 그 아저씨는 알지 못한다고 했어. 아빠는 애써 태연한 듯 다시 들를 테니 혹시나 찾으면 알려달라고 하고는 저녁에 다시 올 테니 닭볶음탕을 준비해 달라고 했었지.

 

그리고 우리는 물어물어 라씨집으로 갔어. 블루라씨집과 시원라씨집은 아주 가까이에 있었어. 과거에 블루라씨집에서 어떤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우린 시원라씨집으로 갔었지. 한국사람들이 나오면서 참 맛있어요했어. 라씨를 만드는 것도 보고 아저씨와 함께 사진도 찍었었지. 드디어 기다리던 라씨가 나왔어. 작은 그릇에 생각보다 양이 많았어. 과연 다 먹을 수 있을까 했지만, 먹어보고 정말 맛있어서 더 먹고 싶을 지경이었지.

 

아빠는 코코낫믹스라씨, 산아는 바나나 라씨를 먹었었던가?

암튼 아빠의 선택이 제일 나았었지. 다들 아빠 꺼 먹어보고는 제일 맛있다고 했었으니까.

 

급하게 라씨집을 나오자 벌써 어둠이 깔리고 있었어. 6시반에 시작하는 메인가트의 푸자를 보고자 했는데, 버닝가트에 나오자 벌써 620분이었던 거야. 시간도 없고 해서 보트를 타고 푸자를 보려고 알아봤지만 그 많던 보트꾼들이 다 없어진 거야.

 

하는 수 없이 걸어서 메인가트까지 갔지. 메인가트까진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어. 그래서 대부분의 의식을 볼 수 있었지.

우리가 의식이 보이는 곳에 서서 자리를 잡자 누군가 우리에게 와서 빨간 가루를 우리의 이마에 찍어주면서 복을 빌어주었어. 산아는 끝내 사양했지. 근데, 그게 다 돈 때문인 줄 나중에야 알았지. 돈을 요구하길래 아빠는 몇 푼을 그가 내미는 접시에 엊어 주었지. 기분이 씁쓸했어.

좀 지나니까 또 다른 사람이 와서 또 이마에 그 가루를 찍어 바르려고 했지만 아빠는 극구 거절했지.

 

푸자를 마치고 라가까페로 왔어. 맛있는 닭볶음이 기다리고 있었거든. 한국에서 먹는 닭도리탕과 비슷했는데, 매콤하면서도 참 맛있었어. 산아는 이곳의 기억이 정말 좋았는지 며칠 더 있고 싶다고 하기도 했고, 친구들과 함께 오고 싶다고도 했었지.

 

참 잃어버린 줄 알았던 아빠의 핸드폰은 아저씨가 찾아 주었어. 게스트하우스에 두고 왔다는 아빠의 기억이 틀리진 않았던 거야.

아저씨가 아빠한테 보트 삯으로 5백루피짜리를 지불하지 않았냐고 물었어. 그랬다고 했더니 아빠가 준 지폐가 위조지폐였다면서 아빠한테 보여줬어. 아빠는 다시 새로운 돈과 바꿔드렸지. 아빠 돈은 회사에서 직접 받았었고, 회사는 그 돈을 은행에서 받아왔을텐데 위조지폐였다는 게 믿기지 않았어. 사장님이 얘기가 인도에서는 네팔 등에서 만든 위조지폐가 많이 돌아다닌다는 거야.      

 

라가까페에서 호텔로 올때는 자전거릭샤를 이용했지. 릭샤 아저씨가 힘겹게 자전거 패달을 밟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새로운 경험이었고 재미도 있었어.

 

다음날 아침 아빠는 너희들 잠든 틈에 산책을 나갔었어. 안개가 무척 짙었어. 그 이른 아침에 찬물에 멱을 감는 인도인들을 볼 수 있었어. 가트는 전날 소똥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던 것과는 달리 누군가에 의해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어.

 

호텔에서 체크아웃하고 우린 짐을 모두 메고 다시 어제 오후처럼 가트를 걸었지. 어제 봤던 풍경을 되짚으며 어제 보았던 사람들도 보았지. 한국 사람들도 제법 많았어. 그 중에 만난 나이 많은 한 아저씨는 딸과 함께 있었지. 우리가 다음에 갈 목적지가 오르차라고 알려줬더니 자기들은 거기서 일주일 가량을 머물렀다고 했던 거 같애. 그러면서 우리더러 그 호텔에 가서 자신에 대해서 얘기하면 주인이 잘 배려해 줄거라는 얘기도 해줬어.

 

메인가트를 지나칠 때 악수하자고 손내미는 사람들을 이번에는 뿌리쳤지. 거시기에 방울달고 흔들던 아저씨는 이번에도 우리가 지나가자 일어서서 방울을 흔들어댔지.

 

가는 길에 라가까페에 가방을 맡겨두고 이 번에는 블루라씨 집에 가보기로 했어. 근데 오늘 따라 블루라씨 집이 사람들로 가득차서 엄청 붐비는 거야. 할 수 없이 다시 시원라씨집으로 가서 마지막으로 라씨의 맛을 음미했지.

 

바라나씨를 떠나기 전 가트 이외의 의미있는 장소를 가보기로 하고 우린 황금사원을 향해갔어. 과거 바라나시 왕국을 멸망시킨 무굴제국의 아우랑제브 왕이 힌두교 사원을 허물어 뜨리고 이슬람 사원을 지었는데 나중에 힌두교도인들이 돈을 모아 그 옆에 다시 지은 사원이 황금사원이야. 힌두교도 중 누군가 엄청난 양의 금을 기부해서 그 금으로 지붕을 만들게 되어 황금 사원이 되었다고 해. 아우랑제브 왕이 허문 힌두 사원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사원이었는데 이슬람교인 무굴제국이 이 사원을 허물어서 힌두교도인들은 자존심에 아주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고 해. 이 때문에 지금까지도 힌두교인들과 이슬람교인들 사이에 갈등의 골이 크다고 하는데, 테러 위험 때문인지 황금사원 주변에 경찰들이 아주 많았지.

 

황금 사원 입구를 찾는 데만도 한참이 걸렸어. 여러 차례 길을 물어 결국 우리는 황금사원에 들어가는 입구를 찾았지. 가방과 핸드폰, 카메라 등을 가져갈 수 없다고 하여 우리는 유료 보관소에 짐을 맡기고는 다른 사람들 처럼 줄을 섰어. 경찰들의 검색은 매우 삼엄했었지.

 

검색대를 지나오자 어떤 사람이 신발을 벗어야된다고 해. 그래서 신발을 벗었지. 그랬더니 그가 자기한테 맡기라는 거야. 아무래도 돈을 노리는 그 한테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어. 검색대의 경찰에게 물었더니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거야. 드디어 사원 입구에 갔어. 사원 문앞에 있는 경찰한테 가서 뭘 하라는 거야. 거기에는 나이든 남자와 여자 경찰이 있었어. 신발은 거기에 보관해 준다고 했지만, 황금사원 안으로 외국인은 들어갈 수 없다는 거야. 이렇게 한참을 걸려서 어렵게 이곳까지 왔는데,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었어. 못들어가게 할려면 애초 입구에서부터 막았어야 했던 건데 말이지.

하지만 하는 수 없이 우린 허무하게 황금사원을 나왔어. 나오는 길에 안을 들여다 보니 규모는 크지 않았고 작고 뾰족한 지붕에 황금이 씌워져 있었어.

 

기차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고 이젠 더 바라나시에서 지체할 순 없었어. 라가까페에 가서 짐을 챙기고 다시 그 복잡한 길을 다시 걸어나왔어. 오는 길에 개 네마리가 나란히 모닥불앞에 엎드려서 자고 있는 귀여운 모습도 봤었지. 시장에 들러 산아와 별이는 인도 바지를 샀었지. 솔찬이는 첨부터 불만이었던 신발을 샀고. 거리에는 축제기간이라 이와 관련된 퍼레이드가 진행되고 있었어.

역까지 가는 길에도 자전거릭샤를 선택했어. 길거리가 아주 복잡해서 오토릭샤가 시간이 더 걸릴 거 같았거든. 어렵게 역에 왔는데, 기차 시간을 알려주는 보드를 확인했더니 기차가 많이 지연되고 있었어. 어디 들어가 쉴 때도 없고 그냥 역광장에 눌러 앉아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지. 너희들은 광장에 앉아 있는 소에게 가서 놀았지. 소랑 장난하는게 뭐가 그리 재밌는지.

심심한 너희들에게 아빠가 프로젝트를 주었어. 길 건너까지 가서 과자를 사오라는. 너희들은 한참 만에 프로젝트를 무사히 완성하고 돌아왔어.

 

그렇게 기다리다 열차시간이 되었고, 우린 카주라호행 열차에 올랐어. 카주라호행 열차에서는 AC3 등급의 열차를 탔었는데, 맞은 편 통로 2층에는 중국 사람이 타고 있었어. 그 뒤에 앉아 있는 여자친구와 같이 여행한다고 했어. 아빠가 여자친구냐고 물어봤는데 여자친군 아니라고 하더군. 그럼뭐지?

우리 바로 뒤칸에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국사람들이 여러 명 있었어. 방학이라 학생들이 많이들 오는 듯 했어. 우리가 탄 맨 위 칸에는 서양커플이 양쪽으로 누워 있었었지.

 

원래 시간대로라면은 카주라호에는 새벽 5시쯤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었어. 근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출발부터 지연한 기차는 11시가 넘어서 카주라호에 도착했었던걸로 기억해. 아빠는 새벽 다섯시에 도착하면 추위를 피할 곳도 마땅치 않고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했었거든.

 

카주라호 역을 나오자 역시나 오토릭샤 아저씨들의 호객이 시작되었고, 아빠는 한국말을 대충하는 아저씨의 릭샤를 선택했지. 그 아저씨는 자기 친구중에 한국말을 아주 잘하는 민수라는 친구가 있다며 그와 친구인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듯 했어. 15분쯤을 달려와 카주라호에 도착했고 거기서 시골밥상이라는 곳으로 가서 식사를 시켰지. 2층에는 게스트하우스를 하고 있었고 3층 옥상에 식당이 있었어. 저 건너편에 전라도 밥집이라는 간판도 보였어. 식사는 한참 만에 나왔는데, 모양은 한국음식이었지만 맛은 영 이상했어. 그렇다고 못 먹을 정도는 아니라서 대충 먹었지. 가방 보관해 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게스트 하우스 안의 한 방에 짐을 보관해 주었어.

 

바로 근처에 자전거를 빌려주는 곳이 있었어. 그 곳에서 자전거를 빌렸는데 주인집 꼬마가 앞장서서 유적지 이곳저곳을 안내해 줬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내내 현지 주민들이 우리를 보고, “친구, 어디가요라며 한국말로 말을 걸어왔지. 심지어 겨우 말을 배웠을 만큼 어린 꼬마조차도 그 정도의 한국말을 했었어. 기분이 좋지는 않았어.

 

한 유적지에서 한국인 관광객들을 만났어. 그들은 우리를 대만 사람들로 봤다는 거야. 그곳에서 아빠가 야한 열쇠고리 기념품을 샀었는데, 그걸 너희들이 다 빼앗아 가 버렸지.

 

카주라호의 힌두교 사원은 과거에는 2백여개가 있었는데, 무굴제국이 거의 다 허물어 버리고 지금은 22 곳인가 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해.  카주라호 사원은 야한 조각들로 유명했는데, 아빠는 너희들이 지루해 할까봐 야한 조각 찾으면 상으로 뽀뽀를 해 주기도 했었지.

 

마지막으로 서부 사원군에 갔었어. 그 곳에는 울타리가 쳐지고 별도로 표를 받는 잘 정돈된 사원이었어. 규모도 훨씬 컸고 웅장했지. 하지만 너희들은 이미 지쳐있었고 피곤해 보였어.

그 곳을 나와 자전거를 반납하고는 처음 식사를 한 바로 맞은편 이탈리아 레스트로랑으로 갔어. 식사를 주문하고 야외 테이블에 앉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 그래서 내부로 자리를 옮겼지.  실내는 인테리어가 별로였고 어두컴컴했어. 파스타와 피자를 먹었는데 내부 분위기에 비하면 맛은 괜찮았던거 같애.

 

식사를 하고 나오자 6시쯤 되었어. 짐을 챙기고 나오는데 게스트 하우스 아저씨가 택시를 알아봐 준다고 했어. 2천루피에 오르차까지 데려다 주겠다며. 하지만 기다리는 택시는 한참동안 보이지 않았어. 아빠는 더 이상 못기다리겠으니 5분내에 오지 않으면 다른 택시를 알아보겠다고 했어. 그 말이 끝나자 곧 택시가 왔었지.

 

택시는 저번에 파트나에서 바라나시로 올때의 고물택시에 비하면 엄청 괜찮았어. 한국의 작은 승용차 수준이었지. 택시를 타고 한참을 달려 오르차에 왔어. 아저씨가 어느 호텔에 갈 것인지 물었지. 아빠는 오르차성 내부의 쉬시마할에 호텔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던 터라 방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쪽으로 가자고 했지. 기왕 잘 거면 괜찮은 데서 자고 싶었으니까.

 

다행히 쉬시마할에는 방이 있었고 제항기르 마할 아래에 있는 방을 하나 잡을 수 있었어. 방안에는 온풍기가 있었는데 이미 가동시켜 놓았는지 방안에는 온기가 돌고 있었어. 방도 넓고 깨끗했고 화장실도 마찬가지였어. 다들 마음에 들어했지.

자기 전에 카주라호를 떠나오기 전에 샀던 파파야를 깎아 먹었어. 냄새가 좀 이상했지만 달고 맛있었어. 산아는 시원한 뭔가를 기대했었는데 좀 아쉬워했지만 잘 먹었던거 같아.

 

아침엔 호텔에서 제공하는 토스트를 먹고 제항기를 마할에 올랐지. 제항기르 마할은 고풍스런 예쁜 성이었어. 3층에 오르자 주변이 한눈에 들어왔었지.

 

제항기르는 무굴제국의 악바르 왕의 아들이었는데, 한 때 왕이 되려고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해서 이곳 오르차 왕국으로 숨어들었다고 해. 당시 오르차 왕은 제항기르 왕자를 잘 보살펴 줬었는데, 덕분에 나중에 악바르 왕이 죽고 제항기르가 왕이 된 후에도 친밀한 관계가 이어졌다고 해. 하지만 제항기르의 손자인 아우랑제브는 힌두교 왕국인 이곳 오르차를 멸망시켰다는 비극적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지.

그래서 이 성의 이름이 제항기르 마할이 된 모양이야. 제항기르 마할을 구경하고 우리는 아래로 내려와 쉬시 마할도 구경했어.

 

밖으로 나와 성 맞은 편 시장으로 갔지. 작은 동네였지만 시장엔 사람들이 제법 많았어. 한 가게에서 우리는 감자를 으갠 음식을 시켰는데 나뭇잎에 싸여져 나온 음식은, 값은 저렴하면서도 그런대로 맛이 괜찮았던 거 같애. 골목 끝에는 광장이 나왔고 거기에는 힌두사원이 있었어. 입구가 단순해 보이는 힌두사원의 왼쪽에는 오래되어 보이는 이슬람 양식의 건물이 있었어. 우린 그곳으로 갔지. 내부로 들어가니 좀 어두컴컴한 넓은 홀이 있었는데, 그 곳을 안내해주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우리는 그 건물 위로 올라갈 수 있었어. 좁고 어두운 통로는 렌텐이 없으면 올라가기 힘들었지. 드디어 꼭데기로 올라가자 저 멀리 우리가 방금 구경하고 나왔던 오르차 성이 한눈에 들어왔어. 동화에서처럼 예쁜 풍경이었지.

 

이슬람 사원을 나와서 우린 강으로 갔어. 인도에서는 보기 어려운, 맑고 수량이 많은 강이었어. 이 강을 따라 작은 가트를 지났고 오래된 무덤안으로 들어갔지. 역시 무덤에서 위로 올라가는 계단은 좁고 어두웠는데, 꼭데기로 올라가니 시원하게 주위가 트여있었어. 그 무덤은 사면이 모두 같은 모양으로 되어 있었는데, 우린 그곳에서 독수리와 앵무새들을 보며 한참 시간을 보냈지.

 

그곳을 내려와서 우린 다시 오르차성으로 갔어. 표끊는 아저씨한테 호텔에 둔 짐을 챙기러 가겠다고 했더니 그냥 들여보내 주었어.

아직 시간이 남아 우린 호텔로 가지 않고 오르차 성 산책로를 따라 걸었어. 호텔로 들어가는 골목 맞은 편의 유적 건물에 너희들은 동전으로 흔적을 남겨 놓기도 했지.

 

아래쪽으로 난 길을 걷다가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따라 작은 집 같은 곳에 들렀어. 그곳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한 남자와 노래를 하는 여러 아줌마들이 있었어. 우리는 그들의 노래와 춤을 한동안 들었었지.

한바퀴를 돌아 입구 근처에 다 와갈 때, 우리는 나무위에 앉아 있는 원숭이를 보게 되었어. 근데 꼬리가 엄청 굵고 긴거야. 그게 꼬리인지 나뭇가지인지 헷갈려서 자세히 봤는데 꼬리였던 거야. 그것도 한마리가 아니고 여러 마리가 있었어. 아빠를 따라 너희들도 그 원숭이들 가까이에로 갔지. 한 원숭이가 휙 지나갔었는데, 너희들은 다즐링에서 원숭이에게 당한 기억도 있고 해서 확 쫄았었지. 아빠가 관심없는 척 하면 괜찮다고 일러 줬던대로 하니까 해꼬지 없이 그냥 지나쳐갔어. 인도에는 원숭이 종류도 참 다양한 거 같아.

 

호텔서 짐을 챙겨 오르차를 나왔어. 나오는 길에 호텔의 한 아저씨가 오토릭샤를 불러줬어. 아무래도 늦을 거 같아 그냥 막 내려오는데 다행히 입구에서 릭샤를 만났어. 하지만 20분이면 도착할 줄 알았던 역에는 예정된 열차의 출발시간을 10분 정도 넘겨서야 도착했어. 하지만 시간을 확인하고는 곧 안심했지. 기대했던 대로 또 연착이었던 거야. 앞쪽의 식당에 가서 간단한 먹을거리를 시켜 놓고 시간을 보낸 뒤 플랫폼으로 갔어.

 

플렛폼에는 단체여행을 온 한국 사람들로 가득했어. 낮에 오르차에서 봤던 일본인 관광객들도 있었고. 그들 대부분은 우리와 같은 칸의 열차를 탔어.  AC chair 등급의 열차로 우리나라 열차와 비슷했지만 이곳에서는 상당히 고급이었나봐. 식사와 간식이 제공되었거든. 하지만 너희는 맛을 못봤지. 아그라로 오는 내내 골아 떨어져 있었거든. 아그라에는 초저녁에 도착예정이었지만 시간이 늦어 한 밤중에 도착했어. 오토릭샤를 타고 주정부에서 운영한다는 호텔을 찾아갔지. 가는 길이 제법 멀었고 바람도 차가왔어. 그 때문인지 나중에 산아가 몸이 안좋아졌었지.

그 호텔은 천막으로 된 호텔이었어. 온풍기가 있었지만 그렇게 따뜻하지는 못했어. 다음날 오바마가 온다고 해서 호텔에 체크인하는게 많이 까다로왔어. 양식을 몇 개나 작성하고 나서야 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

 

다음날 호텔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타지마할로 가려고 나왔어. 주차장에서 표를 끊어야 했는데 어떤 사람이 친절하게 안내를 해줬어. 세상에 꽁짜는 없다는 얘기를 인도에 와서 특히 많이 깨닫게 되는데 이 곳에서도 예외는 아니었지. 그 사람은 가이드였던 거야. 물론 아빠가 의도를 몰랐겠어? 그래서 첨부터 거리를 두었고 가이드가 해주겠다는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지.

 

앞으로 니네들이 학교에서 틀림없이 만나게 될 타지마할에 갔었지.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어. 역시나 검문검색을 거치고 타지마할에 들어섰지. 흰 대리석으로 만든 거대한 무덤이었는데 건물 뿐만 아니라 건물을 돋보이게 만든 조경도 훌륭했지.

 

건물로 들어가기 전까지 사진을 많이 찍었었어. 표를 끊을 때 받았던 덧신을 신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어. 안엔 별로 볼게 없었지만 여기에 온 이상 안 들어가 볼 수는 없지. 안엔 사람들로 붐볐어. 인도 사람들은 길게 줄을 서야 했지만 우리 같은 외국인들은 바로 들어갈 수가 있었어. 산아는 무덤 안에서 핸드폰은 꺼내 사진을 몇장 찍었었지. 근데 그게 화근이었어. 무덤안을 사분에 3바퀴쯤 돌았을까. 산아가 핸드폰을 잃어버렸다고 했어. 아빠는 입구로 가서 지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경찰들에게 알렸고, 너흰 반대로 돌아가서 바닥을 살폈지만 결국 찾지 못했어. 산아는 그 덕분에 기분이 많이 다운되었지. 나오는 길에 관리사무소에 들러 분실물 신고를 했는데, 그 곳에 경찰관이 하는 말이 내부에 소매치가 많대. 더군다나 산아는 최신폰이어서 아마 나쁜 사람이 눈여겨 보고 슬쩍한 거 같애.

 

솔찬이 핸드폰에 산아 핸드폰까지 잊어버려서 아빠 또한 마음이 쓰렸지만, 어쩔 수 없는 건 빨리 잊어 버리는 게 상책이지. 계속 생각해 봤자 마음만 아플 뿐이거든.

타지마할을 나와서 마차를 타고 아그라포트로 가서 구경을 했지만 산아의 마음은 풀어지지 않았어. 더구나 몸까지 아프다고 하는거야. 아그라포트에서 아무나 강을 보고 나올 때에는 산아의 몸이 많이 좋지 않았던 거 같애.

오토릭샤를 타고 짐을 가지러 호텔로 가는 동안 산아가 많이 힘들어했어. 오토릭샤가 갈 수 있는 데까지 가서 거기서 부터는 걸어가야 했는데, 아빠는 너희들에게 아까 오던 길에 본 맥도날드에서 기다리는게 어떻겠냐고 했더니 그러겠다고 했어. 그래서 오토릭샤 기사한테 니네들을 거기에 데라다 달라고 부탁하고는 별이와 둘이서만 호텔로 돌아와 짐을 챙겼었지. 걸어가는 동안 군인들을 참 많이 봤어. 다음날 부시 대통령이 델리에 온다고 그러는 모양이야.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사서 너희들을 데리고 기차역으로 갔지. 이젠 델리로 가서 여행을 정리할 때가 된거야. 우리 좌석이 다 흩어져 있어서 좀 불편했지. 윗쪽 침대에서 사온 햄버거를 먹고 누웠어. 산아가 몸이 좋지 않아 걱정이었지. 어느덧 델리의 니자무딘역에 도착했어.

 

인도에서의 마지막 밤이 될 거니까 역에서 가까운 괜찮은 호텔을 찾아 예로캡(택시)를 타고 네루광장의 크라운플라자 호텔로 갔어. 숙박료가 1만루피가 넘었던거 같애. 암튼 객실은 아주 만족스러웠어. 방안이 따뜻했고 욕실도 넓고 따뜻한 물이 나왔어.

 

다음 날 아침은 2층 식당에서 식사를 했는데, 아주 만족스러웠어. 뷔페식이었는데 우리 입맛에도 충분히 만족스러웠지. 정말 배부르게 기분 좋은 아침이었어.

방으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는데 산아가 아프다고 했어. 이번엔 열도 많이 났어. 이대로 호텔을 나가기엔 부담스러웠어. 비행기는 밤 11시반쯤에 있었는데 그때까지 산아의 몸상태로 어딜 다닌다는 게 쉽지 않을 거 같았거든. 아빠는 마지막 날인 오늘 꿉뜨미나르를 비롯한 몇 군데를 너희들에게 보여줄 계획이었지만 아픈 산아를 데리고 그럴 순 없었지. 고민 끝에 호텔을 1박 더 연장했어. 연장하지 않으면 12시에는 나가야 됐거든.

 

아빠 생각에는 산아의 증세가 아무래도 장염같았는데, 만일에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아프면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었어. 솔찬이와 별이를 방에 남겨둔 채 호텔에서 준비해준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갔어. 아빠도 인도에서 제법 있었지만 병원에는 처음 가봤어. 아빠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 이래저래 물어물어 헤매었어. 진료실 갔다가 검사실 갔다가 하면서. 산아를 진료실 앞에 기다리게 하고는 아빠가 접수를 하고 왔었는데, 산아가 보이지 않았어. 앉아있던 아줌마가 화장실 갔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잠시 뒤 산아가 나타났어. 아빠를 보자 울었지. 아빠가 보이지 않았다고하면서. 아마 화장실 갔다 나와서 아빠를 찾아 헤맸나 봐. 말도 통하지 않았는데 얼마나 무서웠을까 생각하니 아빠도 마음이 아팠어.

 

검사하기전에 물을 많이 마시고 소변마려울 때까지 참으라고 해서 산아는 물을 반병 이상이나 마셨는데, 검사실에서는 부르질 않았어. 아빠가 막 항의 하니까 그제서야 피검사와 초음파 검사를 했지.

그리고는 다시 처음 왔던 응급실로 갔어. 거기서도 그대로 계속 방치해 둬서 아빠가 또 화를 냈지. 아픈 애를 치료하진 않고 검사만 하고 앉거나 서서 기다리게만 한다고 말야. 그들이 산아를 응급실 병상에 눕혔지만 여전히 한참 동안을 치료하진 않았어. 의사는 검사결과가 나올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거야.

벌써 시간은 오후 4시가 가까워오고 있었고. 아빠는 짜증이 많이났어. 결국 한참뒤에 약을 타서 호텔로 돌아왔어. 약을 먹고 나니 조금씩 나아지긴 하는 거 같았어.

 

저녁을 어디서 먹을까 하다가 처음 인도에 와서 저녁을 먹었던 사켓몰의 칠리라는 식당에 갔어. 오던 날에도 멀미 때문에 힘들어 거의 못먹었었는데 가던 날도 산아는 많이 먹지 못했지. 저녁을 먹고 공항가는 길에 그루가온의 한 쇼핑몰에 너희들을 내려줬지. 인도에서나 싸게 구할 수 있는 비누랑 화장품 따위를 사라고 하고는 그 사이 아빠는 산아가 처음 올 때 가져왔던 캐리어 가방을 가지러 갔어. 아빠 회사와 거래하는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산아의 가방을 가져와 보관하고 있었거든.

 

드디어 공항으로 왔어. 아빠는 너희들이 영어를 못하니 들어가서 도와 줘야 한다고 했지만 탑승객 외에 공항출입을 제한하는 경찰은 결국 아빠의 청사 출입을 허용하지 않았어. 대신 경찰이 직접 도와주겠다 했지. 아빠와 포옹하고 너흰 공항 대합실 안으로 들어갔어. 산아는 움직이는 내내 아빠를 확인하며 손을 흔들었어. 아빠도 너희들이 비행기를 탔을 즈음에야 공항을 나왔어. 그러진 않을 거라 확신했지만 혹시나 안에서 너희들이 곤란한 일을 당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기다렸거든.

 

다행히 산아는 가는 내내 아프지 않고 잘 갔다고 하니 천만 다행이야. 아빠는 너희들이 인도에서 보낸 열하루동안이 좋은 기억으로 남길 바래. 사랑한다. 산아야, 솔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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