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여 전부터 계획한 산행이다.
하지만 목표일 일주일 전부터 일기예보가 불안했다.
주간 예보는 영하 13도를 추정하고 있었다. 한주 중 가장 추운 날이 될 거라고 했다.
디데이가 가까워오면서 당일의 예상 최저기온은 점점 내려가더니, 당일엔 영하 20도를 예상했다.
이번 겨울 중 가장 추운날로 기록될 거라고 했다.
하지만 우린 그냥 포기할 순 없었다.
어쩌면 감내할 수 있을 거라는 자만 같은 것이 있었다.
창익이 말했다.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요?”
농담반 진담반이었지만 포기할 뜻은 없는 듯했다.
창익은 배낭도 없이 침낭가방과 다른 짐가방을 보따리 장수처럼 둘러메고 길을 나섰다. 그 추위에 장갑도 끼지 않고서.
인선은 저녁 무렵까지 아무런 준비도 없었다.
자기가 준비하기로 했던 깔개도 오후 늦게서야 겨우 준비했다. 배낭도 없었서 자기네 집에서 멀지 않은 단골가게에서 외상으로 배낭을 마련했다. 아주 좋 배낭은 아니었지만 아주 저렴한 가격에 큰 용량의 배낭을 마련했다.
이렇게 셋은 운길산 입구에 차를 대고,
당연히 준비했어야 할 컵과 젓가락을 운길산역 근처의 식당에서 겨우 해서 어두운 산길로 들어섰다. 처음 오르는 길엔 눈이 많고 가팔라서 준비한 아이젠을 착용했다. 그러나 곧 콘크리트 찻길이 나타났고 그 길은 차량 운행때문인지 눈이 제법 제거되어 있었다.
밤공기가 찬 듯 했지만 계속된 오르막길로 인한 자가 발열로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다들 언제나 나올까하고 구역구역 오르다 보니 고대하던 수종사에 나타났다.
수종사를 향해 마지막 힘을 힘을 보탰다.
내가 수종사의 포토존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한 여자가 문을 열고 우릴 쳐다봤다.
“늦었습니다. 그만 내려가세요.”
처음에는 우리를 걱정해서 하는 소리인줄 알았다. 나중에 몇마디 더 듣고서야 우리는 ‘시끄러우니 좀 꺼저줄래?’ 라는 뜻이라는 것을 알게되었고, 잠시 절에서 한 숨 돌리려는 마음을 접고 다시 가던 길을 재촉했다.
기억에, 수종사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정상이 나올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올라도 힘들기만 할 뿐 능선이 나타나진 않았다.
인선은 많이 지친 듯 가뿐숨을 몰아쉬고 자주 뒤쳐졌다.
나조차도 체력이 고갈되어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핫브레이크 따위의 보행식을 준비해 오지 않은 것을 크게 후회했다.
뒤처지는 인선과 쉬어가자고 말하는 간격이 짧아지는 창익을 고려해 쉬는 간격을 줄였다.
그렇게 구역구역 가다보니 어느새 깔딱고개를 벗어나고 또 얼마안가서 저만치 정상이 보이는 봉우리가 나타났다. 정상을 향해 가려고 하자 인선이 정상아래 봉우리에 데크가 있는 것으로 본거 같다며 그 낮은 봉우리를 가보고자 했다.
그 봉우리에 올랐더니 과연 데크가 있었다.
하기야 눈이 20cm가량 쌓여 어디 자리를 잡기도 만만찮았다.
곧 체온이 떨어질 것을 걱정하여 나는 빨리 바람을 막아줄 쉘터를 만들고자 서둘렀다.
내 인디언 텐트를 치려고 팩을 박는데, 몇차례 박지도 않아 플라스틱 망치가 부러졌다. 아마도 엄청나게 낮은 외기가 망치의 인성을 빼앗아 수차례의 충격에 쉽게 부러진 모양이다.
그런데 땅이 얼어 팩은 들어가지도 않았으며, 부러진 망치를 대신할 어떤 것도 눈덮이고 얼어붙은 땅에서 구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인선의 텐트를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인선의 텐트는 오토캠핑용도로 오는 동안 상당한 짐이 되어서 출발할 때 약간 타박했었는데, 만일 그 때문에 두고 왔었더라면 정말 난처할 지경에 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데크위에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준비해간 목살부터 구웠다. 첨엔 올라오는 동안의 갈증을 맥주로 풀었는데, 잠시만 따라 두어도 곧 슬러시 상태가 되어버릴 정도로 텐트 내부조차도 그렇게 추웠지만 우린 추운줄도 모르고 술을 마셨다.
지난 뒤 얘기지만 그 때먹은 목살과 떡볶이가 그렇게 맛있다고들 한다.
적당히 취기가 돈 뒤 다들 잠자리에 들었다. 그나마 요리중엔 버너의 불길로 인해 텐트안의 온도가 외기보다 약간은 높았을 테지만 이젠 안전상 버너의 불도 없이 침낭하나에 의지해서 잠을 청해야 한다.
자는 동안 침낭이 부실한 창익을 몇 번씩 불러서 안전을 확인했다. 다행히 창익은 코를 골며 잘도 잤다.
다음날 아침 텐트를 걷고 정리를 한뒤 어제 보지 못한 산속의 설경을 감상하며 산을 내려왔다. 내려오니 열시가 넘어서고 있었고, 볕이 따뜻이 내리쬐고 있었다. 차에 올라 온도를 확인하니 그 따뜻하다 느껴지던 당시도 영하 14도였다. 어젯밤 산위의 온도는 적어도 영하 25도정도는 된 듯하다.
다들 피곤했지만 그날의 산행이 좋았던지 후일을 기약했다. 다음 산행은 관악산이다.
약간의 술과 맑은 공기 그리고 인적없는 산이 주는 신선한 분위기 그야말로 중독성이 있는 야간산행과 비박의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주산 옥마봉 비행 (0) | 2013.07.28 |
---|---|
딸과 ‘7번방의 선물’을 보다. (0) | 2013.02.21 |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며 (0) | 2012.09.24 |
생일 (0) | 2012.08.31 |
저녁시간 한강을 가다 (0) | 2012.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