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후기

찬 바람 불기 시작하는 계절에 만난 가슴 따뜻한 '완득이'

아르쎄 2011. 11. 20. 13:15

 

소주한잔 하던 일행과 헤어지고 화려한 네온사인 (아니지, 요즘엔 LED 조명이라고 해야되나?)을 배경으로 왁자지껄 떠드는 도심의 연말 거리를 혼자 걸어본 사람이라면, 낙엽 뒹구는 외곽의 을씨년스럽고 한산한 거리가 차라리 나을 수도 있겠다는 내 생각에 동의할지도 모르겠다. 요즘 처럼 차가운 바람이 불고 그 바람에 낙엽 뒹구는 계절이 되면 정말 사람냄새가 그리워 진다.

얼마전 본 영화 완득이이는 오랜만에 정말 사람의 냄새를 느끼게 해 준 그런 영화였다.  시장바닥을 전전하며 자신의 생긴 모양(꼽추)를 자산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가 어찌어찌해서 챙겨서 같이 살게 된 삼촌, 그리고 오래 전 가족을 떠나갔던 핀리핀 어머니. 완득이는 그 가족의 아들로 살아가는 객관적으로 제대로 된 루저다.

그리고, 근엄함의 유치한 코드를 과감히 내 던지고 빈틈 투성이의 인간성 본래의 모습에 충실한, 인간적으로는 오히려 더 완벽한(?) 똥주 선생. 교권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목에 힘주고 근엄함과 권위를 내세우지만 사실상 내면에는 자신의 사리사욕과 변태적 밤문화에 열광하는 우리 시대의 존경받는(?) 선생님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캐릭터다. 똥주는, 표면적으로는 아이들에게 욕설과 폭력(?)을 행사하지만 내면에는 정말 그들에 대한 사랑이 바탕이었으며, 외부에서는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을 거두지 않고 그 속에 직접 개입하는, 실천하는 선생님이다. 왜 이런 경박하고, 감정적인 선생님이 우리에겐 없을까 하는 아쉬움과 더불어 이런 별볼일 없는 캐릭터가 마치 난세의 영웅을 기다리는 민초의 마음과 같이 기다려지는 것은 이 스마트한 시대에 사람의 냄새에 목말라하는 현대인으로서의 외로움 때문이 아닐까 한다.

영화는 이런 루저들의 이야기 그리고 루저들이 사는 동네의 옥탑방을 배경으로 한다. 나도 한때 살았던 그리고 살면서 다른 이들의 삶의 모습도 창문너머로 엿볼 수 있었던, 덕분에 같은 시간대를 함께 사는 이들의 고민까지도 느낄 수 있었던 달동네라고 일컬어지던 그 고지대 옥탑방을 마음속으로 그리게 된다.  

루저들의 이야기라고? 넓은 평수 아파트 혹은 호화 저택에 살면서 생계와 관련 없는 갖가지 애정행각 내지는 말도 안 되는 갈등구조 따위로 얽어서 만든 TV 드라마가 오히려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닐까? 나는 영화 속의 모습이 이 삐까번쩍한 세상에서, 초라한(스스로 초라하게 여기는) 자신을 감추고 애써 외면하려 했던 우리네가 사는 실제적 현실이지 않을까 한다.

루저들의 이야기, 루저들의 동네를 배경으로 하지만 이 영화는 생각처럼 어둡지 않았다. 한번쯤 코끝 찡함과 눈물을 기대해 봄직도 하지만 이 영화엔 그 흔해 빠진 갈등, 크라이막스 따위는 별로 구분되어 느껴지지 않는다. 방황하고 때론 비행도 꿈꿀 수 있는 배경이지만 고등학생 완득이의 마음은 오히려 차분하고 일관된다. 유치한 고등학생의 마음이지만 오히려 세상을 품어안을 수 있는 탄력성을 지니고 있다.

낙엽뒹구는 계절이 지나면 눈발 흩날리는 계절이 올 것이다.  이번 겨울은, 사람의 온기를 필요로 하여 서로 부둥켜 안을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추운 겨울이었으면 좋겠다.  정말 가까이 있는 사람을 안을 용기가 없다면 얼어 죽어버릴 정도로. 그 놈의 자존심에, 권위에 포옹을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올 겨울이 가기전에 다 죽어 없어지도록.

올해가 가기 전 그 가슴 따뜻하고 순수한 완득이를 다시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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