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후기

영화관람후기_127시간

아르쎄 2011. 2. 23. 14:32

퇴근 길에 홀로 극장을 찾았다.
그 동안 지친 심신에 대한 보상으로 그리고 한동안 문화생활을 하지 못했기에 그날은 영화를 봐야 겠다고 작심했다.

‘아이들’을 볼까 하다가 러닝타임이 너무 길어 상영 시작은 20분 늦지만 끝나는 시간이 오히려 20분이 빠른 ‘127시간’을 선택했다.
출연자가 별로 없고 배경 및 소품도 그다지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 저 예산 영화인 듯 한데, 편집기법이 좀 독특하다. 영화 초반부에 여행을 떠나고 자전거로 달리는 동안의 장면에서 마치 디지털 카메라를 조작하는 듯한 화면 구성이 주인공의 들뜬 마음 상태를 충분히 전해주며 나에게도 그의 아드레날린을 나눠 가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러닝타임의 대부분이 협곡 좁은 틈의 한정된 공간에서 진행되었지만 보는 동안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않을 만큼 이야기는 짜임새 있게 전개되었다.
바위에 팔이 끼어 예고된 죽음 앞에서 주인공은 스스로 만들어 내는 내면의 상상과 환상을 통해 삶에 대해 성찰하고 살아왔던 삶을 반성한다. 하지만 에필로그에서 보여주듯 다시 삶을 찾은 후에도 레포츠를 좋아하는 그의 외면적 삶의 형태는 별로 바뀌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내면의 상태와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는 많이 바뀌었을는지 모르겠지만 (그래야 스토리 구성상 말이 되긴 하겠지만) 사람이 그리 쉽게 변할 수 있다는 생각에는 나는 부정적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니 태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유전자 깊이 새겨진 자신의 아이덴티티는 ‘죽음’조차도 누를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우리 보다 앞서 살다 간 많은 사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죽음의 공포가 드리워진 상황에서도 혼자 인터뷰에 대한 질의 답변을 하면서 떠들어 대는 장면에서 난 그가 원래부터 몸과 마음이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팔을 자르고 나온 뒤 사람들을 만나 구원을 청할 때, 다음 장면에서 그가 쓰러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는 물만 얻어 마시고는 헬기가 오기 전까지 거의 부축도 받지 않은 채 그들과 나란히 걸었을 뿐이다.
원래 그렇게 까지 해서 살아났다면 객관적으로도 완전히 에네지가 쇠했을 것이며, 주관적으로도  내가 얼마나 아프고 배고프고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쓰러지는 것이 옳다. 하지만 주인공은 오히려 티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같았다.
만일 쓰러졌다면 더 극적이었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리얼함이 덜 했을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실제있었던 이야기인 만큼 극적 요소를 배제하여 최대한 사실 그대로를 묘사하려 한 감독의 세심한 계획이 엿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영화의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나는 곧 이 영화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5일 동안 바위에 팔이 끼어 고립됐던 주인공이 스스로 무딘 칼로 팔을 잘라 위기를 벗어나게 되는데, 이 장면에서 난 거의 쇼크 상태에 빠졌던 것이다. 혈관이 일시적으로 팽창하여 많은 양의 피가 내 몸의 낮은 곳으로 쳐지면서 머리에 공급되는 피가 부족해지고 이로 인해 식은 땀과 함께 어지러움에 의식이 몽롱해 지는 단계까지 이르게 되었다. 주인공은 스스로 팔을 자르다가 몇 번이나 신경을 건드려 실신했다 깨어나곤 했는데, 나 또한 정신적으로가 아니라 정말 육체적으로 견디기 힘들었었다. 영화가 끝나고 맥빠진 나는 겨우겨우 힘든 몸을 추스려 나와야 했다.


평화를 사랑하는 나에게는 '잔인한' 영화가 정말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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