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후기

영화 '헬로우 고스트' 관람후기

아르쎄 2010. 12. 29. 17:49

지난 일요일 무작정 극장에 갔다.
무작정이라고 하지만 사실 ‘황해’를 염두해 두고 간 것이었다. 노원 롯데시네마에 오후 3시경에 갔었는데 대부분의 표가 매진되고 저녁 7시 이후에 상영하는 영화표나 구할 수 있을까 말까 했다. 그나마 볼만한 프로의 그날 표는 이미 매진되어 크리스마스 연휴를 실감케 했다.
 
어쩔까 하다가, 관람객이 많지 않아 극장이 늘 한산한 충무로 대한극장을 떠올리고 ‘거기에 가면 표를 바로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했다. 가는 길에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충무로로 차를 몰았다.
역시나 대한극장은 바로 상영하는 프로도 표를 구할 수 있을 정도로 한산했다. 과거 대한민국 극장을 대표하던 충무로 대한극장이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으며,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극장을 유지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매한 시간에 도착한 나는, ‘황해’를 보기에는 시간이 너무 맞지 않았고 가까운 시간에 ‘헬로 고스트’가 상영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로서는 ‘헬로 고스트’에 대한 예고편도 보지 않았을 뿐더러 영화에 대한 사전 파악조차 되어있지 않았다.
 
하지만, 차태현 주연의 코믹영화임을 볼 때, 한눈에 보기에도 대략 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유의 영화는 나중에라도 IP TV나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관람하는 게 제격이라고 나름대로 생각하지만 사실 이후에도 그렇게 볼 일은 거의 없다. 마음만 가지고 있다가 대부분 지나치고 만다.
암튼, 적정한 시간대에 볼만한 영화 중에 대안이 별로 없어 표를 끊고 들어갔다.

생각하던 수준이었다. 생각했던 대로 차태현의 코믹연기는 그런대로 괜찮았고 감정에 약한 나를 웃기기에 충분했다.

삶의 불행에 좌절하여 수 차례 자살을 결심했던 주인공이 빙의 된 네 명의 귀신과 옥신각신 하다가 결국 어떤 반전에 의해 큰 깨달음을 얻고, 삶에 대한 애착과 행복을 얻는다는 뻔한 전체 스토리임은 누구나 초기 전개 단계에서 부터 예상할 수 있을 것이고, 결국 그 것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얼마나 웃기고 내용적으로 얼마나 짜임새 있냐가 이 영화의 관건이었다.

그런데, 장면 장면에서 웃기는 것 까진 괜찮았는데 구성 면에서는 약간 엉성한 듯 했다. 주인공의 몸에 빙의된 귀신들의 소원이 뭔가 근원적인 한 풀이에는 약간 미흡 했던 것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극적인 반전이 있다고 해봐야 한계가 있을 것이었다.

빙의된 귀신들은 각각 노인, 중년 남자, 중년 여자, 그리고 꼬마 아이. 그네들이 하늘나라로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 만한 이유 내지는 한 따위가 별로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관객의 그런 문제제기에 아랑곳 하지 않고 영화는 계속 진행된다. 관객의 설레임을 가장 유도하기 쉬운 소재가 청춘 남녀간의 사랑이야기다. 이 영화 또한 한 여자를 등장시키는데 주인공은 빙의된 네명의 귀신들과 이 여자 주변을 맴돈다.
이 여자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마음이 따뜻한 아가씨지만 정작 자신의 아버지에게는 거의 막 대하는 나쁜 딸이다. 누구든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녀가 아버지와의 관계가 그리된 것은 과거의 안 좋은 일이 그녀의 가정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로 인해 그녀는 가정을 갖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으며 이것이 차태현과의 관계에 있어서 장애물로 작용하였다.
주인공 차태현이 고아 출신에 항상 외로움에 가득 차 있으며 가족을 갖는 것이 꿈인 것에 비해, 그녀의 캐릭터 설정은 그 반대였던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과연 아버지와 그녀 또는 그녀의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에 대한 설명이 영화 끝날 때까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와야 될 법한 얘기가 왜 나오지 않은 걸까? 추론해 보자면, 그 내용에 대한 촬영 분이 있었지만 편집을 통해 삭제했을 가능성과 애초부터 찍지 않았을 가능성 둘 다 상정해 볼 수 있다. 촬영 분이 있었건 없었건 그 스토리는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뻔한 이야기일 것이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한번쯤은 접해봤을 법한 이야기의 범위를 벗어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감독은 원작이야 어찌 되었건 간에 자세한 내용은 관객들의 상상에 맡기는 쪽으로 정리하지 않았나 싶다.

영화의 거의 막바지까지 왜 구태여 차태현에게 네 명의 귀신이 빙의되어야 했으며, 그렇게 극적일 것 같지도 않은 귀신의 소원이 소재로 등장해야 했는지, 영화전개에 실마리를 나름 잘 잡아낸다고 생각하는 나 조차도 파악해 내지 못했다.

어쩌면 난, 반전을 미리 예측하는 것을, 미리부터 의도적으로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유의 영화를 미리 예측하고 본다면 얼마나 시시하고 유치하겠는가! 그나마 아예 모른 채 본다면 영화가 의도한 감동을 통해서 투자비에 대한 본전 정도는 회복하지 않을까 기대했는지도…

아무튼 난 크라이막스 장면에서 차태현이 김밥을 먹으며 무심코 던진 말을 통해서야 그 동안의 모든 전개가 왜 그렇게 시시하고 하찮아야만 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었고 차태현의 눈물과 동시에 눈물이 내 빰을 적실 만큼 아주 강한 감정에 젖을 수 있었다.

이 얼마나 시기 적절하게 찾아온 카타르시스인지… 나의 감정의 흐름은 감독의 의도와 완전히 일치하게 움직였으며, 옆 사람을 의식해서 흐르는 눈물을 겨우겨우 찍어내며 어떻게든 감정에 저항하려 했던 나는 호흡마져도 흐트려 뜨리면서까지 흐느끼게 되었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감동에 젖어서? 아니다. 사내랍시고 질질짜서 부어 오른 눈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어서였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자세한 설명은 자제 한다. 그 동안 일상에 찌들려 메마른 감정을 녹이고 마음의 카타르시스를 느껴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영화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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