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후기

영화관람 후기 "쓰리 데이즈"

아르쎄 2010. 12. 23. 11:02

 

난 할리우드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내성이 생기는 항생제처럼, 직접 겪어보진 않았지만 계속 강도를 높여야 효과를 볼 수 있는 마약처럼, 할리우드 액션은 그 강도를 더하고 화려한 장면을 키우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그렇고 그런 영화 정도로 기억에서 마져도 희미해 진다.

 

하지만 쓰리데이즈는 예상과는 좀 달랐다.  예고편에서의 차량질주 씬과 같은 아찔한 액션씬은 영화에서는 별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화려한 액션을 기대하고 가는 사람은 많은 실망감을 느낄 것이다. 이 영화 주인공인 러셀크로가 과거 주연한 글레이디에이터 처럼, 헐리우드 액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슈퍼맨과 같은 캐릭터는 이 영화 주인공과는 약간 거리가 있다. 물론 영화의 중후반부에 가서는 나름 빈틈없이 치밀한 계획으로 작전을 완료하는 전개로 헐리우드의 냄새를 완전히 탈피하진 못했지만 말이다.

 

영화 중반기까지는 액션영화가 아니라 드라마에 가까웠다. 행복한 가정에 닥친 불운,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의 노력, 뻔한 스토리다.

그러나 러셀크로와 엘리자베스 벵스의 감정 연기는 정말 훌륭했다. 재판에 지고 마지막 희망이 사라진 뒤 아내를 면회간 러셀크로의 절망과 연민 그리고 아내에 대한 사랑이 모두 녹아난 표정연기, 그리고 밝은 표정으로 들어왔다가 남편의 표정의 의미를 읽고 절망하는 뱅스의 감정연기는 짧은 장면이었지만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었다. 어떻게 저런 연기를 할 수 있는건지…

 

나의 눈시울을 젖게 만든 또 하나의 장면이 있었다.

러셀이 죽기를 각오하고 돈을 구해서 아들을 맡겨둔 부모님 집에 간다. 긴장감과 피로감에 러셀은 아들의 침대에서 잠이 든다. 그 사이 과묵한 그의 아버지는 러셀의 가방에 꽂힌 항공권을 확인한다. 다음날 아침, 러셀의 어머니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평소 하던 대로의 일상을 진행한다. 그러나 아들과 영원히 작별해야만 하는 것을 아는 그의 아버지는 평소와 다르게 손자에게 입맞춤하고 아들과 악수하고 포옹한다. 그리고 아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Good bye”라고.

나는 서양의 아버지들은 가정적이고 가족들과 대화도 우리보다 훨씬 많은, 우리네 정서와는 다를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장면을 보고 나는 아버지의 마음은 동양과 서양이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영화에서 러셀의 아버지는 평소 자식에게 거의 말이 없다. 아침에 그의 아들과 손자가 집을 나설 때도 인사말 조차 건네지 않는다. 그렇지만 자식의 고민을 마음으로 느끼고 자식이 생각하는 바를 제일 먼저 꿰뚫고 있었던 것은 그의 아버지였다.

재판에 패해 절망에 빠진 아들이 왔을 때도, 아들을 위로하고 같이 아파하는 역할을 아내에게 미뤄주기 위해, 자신은 손자를 데리고 그 자리를 비켜 준다.

이별의 마지막 순간에도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Good bye’라는 그 짧은 인사말 하나에 나는 눈물을 쏟아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 말로써 자신의 마음에 담은 부정을 전하고 영원한 이별의 아픔을 나누고 자식의 행운을 비는 것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문명을 만들어 낸 인간의 언어는 사실 그 이전에 커뮤니케이션 혁명을 가능하게 했던 눈빛(시신경이 눈 중앙에 집중됨으로 인해 상대에 대한 인식, 특히 표정의 읽음을 가능하게 함)에 비하면 사실 하찮은 것이다.

후기를 쓰는 이 순간 조차도 눈물을 닦아야만 하니…

  

전개에 있어서도 예상을 벗어난다. 주인공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탈옥 계획을 세운다. 감옥의 건물 내 외부 구조를 연구하고 엘리베이터 및 세부 기기들 그리고 탈출 동선에 대해서 세세한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우습게도 실전에 옮기려는 시도에서는 ‘영화’가 아닌 ‘현실’에 부딪힌다. 만능키를 테스트하다 들켜 조사받는 과정에서 심리적 스트레스로 공황상태에 빠진다. 은행을 털려고 작심했지만 시작도 못한 채 하마터면 사고까지 낼 뻔 한다. 가짜 신분증을 만들려고 슬럼가를 찾았다가 얻어터지고 돈만 뜯긴다.

그런 장면에서 난, 스필버그 영화의 리얼리티가 느껴진다. 스필버그는 전쟁의 멋진 액션을 원하는 이들에게 철저한 리얼리티로 진짜 전쟁을 체험하게 하고 기대했던 화려한 액션 대신에 전쟁의 공포와 전율을 느끼게 했다(라이언일병 구하기에서).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테러리스트에 대해서는, 긴장감으로 가득한 빠른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려 줌으로써 그들도 인간임을 느끼게 했다.(영화 ‘로마’에서)

암튼, 그렇게 세밀한 출옥 계획을 세웠지만, 결국 아주 단순한 방법으로 아내를 병원밖으로 불러낸다. 감옥안에서 통풍구를 뚫고 빠삐용과 같은 탈옥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실망이었겠지만 나에게는 신선함이었고 보다 ‘리얼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오랜 만에 극장에서 성인영화를 봤다. 괜찮은 영화를 본 거 같아 마음이 푸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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