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내 약혼녀 이야기 11/26

아르쎄 2010. 12. 22. 11:39

내겐 가을이라는 이름의 일곱 살짜리 약혼녀가 있다.

바로 아들의 어린이 집 친구이다.

 

지난 봄 어린이 집 텃밭에서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그 아이에게 장난스럽게 내가

가을아 단풍잎(단풍잎은 어린이집에서 사용하는 내 별칭)이랑 결혼할래라며 프로포즈를 했었다.

 

그 때 가을인 ... 생각해 보고.” 라며 즉답을 미뤘다.

 

그 일을 잊고 있던 한 달여 지난 어느 날,

어린이 집에서 일을 하고 있던 나는 저 멀리서 단풍잎~”하고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가을이가 내게 달려 오더니,

단풍잎 귀 좀 빌려 주세요하는 것이다.

있잖아요단풍잎이랑 결혼하기로 했어요.”

귀에다 대고 조심스럽게 얘기하고는 내 빰에 뽀뽀를 해 주었다.

 

그 애의 엄마, 아빠 얘기로는

가을이가 나의 프로포즈를 받은 날부터

매일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고 했다.

엄마, 나 단풍잎이랑 결혼할까?”

가을아, 그건 네가 결정하는 거지, 엄마가 대신 결정할 수는 없어.”

 

그 뒤로 가을인 나를 볼 때마다

단풍잎 우리 언제 결혼할까?” 하며 결혼을 채근했다.

나는, “가을아, 그래도 넌 아직 어리니까 학교는 들어가야 되지 않겠니했더니

가을인 그럼 여덟 살에 학교 가니까 그 때가 되어야 할 수 있겠네.” 하며 서운한 듯 말했다.

 

지난 여름, 가을이는 내게 예쁘게 접은 종이 상자를 선물했다.

단풍잎, 이 거 가져.”

선물이니? 예쁘구나, 고마워.  

단풍잎, 이 안에다 반지 담아서 나한테 줘야 돼.”

이쯤 되면 나도 정말 마음이 설레지 않을 수 없었다.

 

가을이는 가끔 늦은 밤에도 엄마의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냈다.

우리 이쁜 신랑 잘자. 사랑해

 

최근 한동안은 가을이를 보지 못했다.

평가인증/서울형 인증을 위해 주말마다 사역하러 나가던 일도 별로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가을이 엄마를 통해서, 가을이의 결혼 대상이 이젠 나만이 아니란 얘기를 들었다.

괜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114일 서울형 어린이집 인증을 통과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으로서 3번째로 서울형 통과라는 쾌거를 이룬 것을 기념하여

지난 일요일 오후에는 터전(공동육아 어린이집을 흔히 부르는 말)에서 잔치를 했다.

 

행사가 시작되고 한참 후에야 가을이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가을이가 여기 저기 뛰어 다니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다가 시선을 거두고

아마(터전에서 엄마 아빠를 이르는 말)들과 술잔을 나누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누가 내 뒤에서 등을 두드리는 것을 느꼈다.

난 단풍잎 없는 줄 알고못 보는 줄 알았잖아!”

가을이는 이렇게 말하고 곧 두 팔을 벌렸다.

난 가을이를 얼른 안아 올렸다.

 

가을이가 커서 어른이 되면,

한때 결혼을 생각했던 나를 기억할까?

너무도 귀엽고 사랑스런 가을이,

예쁘게 커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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