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우산악회 산행이 있는 날. 회룡역에서 모이기로 약속한 10시가 되기 50전에 집을 나섰다. 회룡역에 가려면 비록 버스와 전철을 번갈아 갈아타야 하긴 하지만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이라 약속시간까지는 충분히 닿을 수 있을 꺼라 생각했다. 수유역까지 걸어가서 전철을 탈까했는데, 집에서 가까운 버스정류장에서 방학동으로 가는 버스노선(1144번)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버스를 기다렸다. 기다린지 20분이 넘은 것 같은데 도무지 버스가 나타나지 않아 옆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아주머니는 그 버스의 운행간격이20분 정도 된다고 했다.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우이동에 가서 방학동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기로 마음먹고 버스를 대충 잡아타고 우이동에 내려 버스를 기다렸다. 잠시 후 기다리는 가운데 온 버스는 바로 아까 내가 그렇게 기다리던 1144번이었다. 시작부터가 이상하게 꼬인다 생각했다. 15분 늦게 도착한 회룡역에는 벌써 선배님들이 다들 나오셔서 늦은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 산행 대장이신 진춘근 선배께서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로 인해 당초 송추계곡으로 넘어가려던 계획을 회룡사를 한 바퀴 돌고 오는 것으로 변경하겠다’고 하셨다. 안전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겠지만 나로서는 기대했던 산행계획이 축소되어 아쉬웠다. 예보상으로는 오후에 비가 온다 했는데, 출발하자 마자 조금씩 뿌리는 듯 하더니 곧 빗줄기가 굵어졌다. 모두들 배낭에서 우의를 꺼내 입거나 우산을 썼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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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 산행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선배님들의 뒤를 따라 맑게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계곡을 거슬러 올라갔다. 한 참을 걸어 올라가자, 뒤편엔 도봉산을 배경으로 하고, 담장을 경계로 계곡을 접한 회룡사가 모습을 나타냈다. | |
다들 비를 피해 필로티 아래로 들어갔다. 그곳은 절에 불공을 드리러 온 사람들이 공양을 하는 곳으로 내부에는 샘물도 흐르고 있었다. 회룡사는 산의 지형을 이용하여 자연스럽게 아래로부터 위로 차차 높아지면서 서로 높이를 달리한 단형을 이룬 터에 가람을 배치하고 있었다. 절 아래쪽 입구에서 보면 전체적인 절의 세를 짐직할 수 있지만 절의 입구에 들어서면서 단의 높이와 방향을 달리한 배치로 인해 전체 윤각의 완전한 모습은 드러나지 않는다. 들어서면서 차차 대웅전의 모습이 드러나고 그 오른쪽의 극락보전, 윗쪽의 삼성각도 제대로 볼 수 있게 된다. 우리 나라 가람의 배치는 한번의 웅장한 위세로 방문하는 사람을 주눅들게 하는 중국이나 일본의 절사 배치와는 달리, 처음엔 조용하고 소박하게 방문자를 불러들여서 서서히 세속의 때를 벗기고 마음가짐을 고르게 한 뒤 자연스레 엄숙한 대웅전으로 인도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회룡사 역시 이러한 우리나라의 가람 배치의 특성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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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사는 무학대사와 정도전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한양천도의 주역인 무학대사는 정도전의 시기와 미움의 받아 이곳 회룡사로 들어와 숨어와 있게 되었는데, 이성계가 왕좌에서 물러난 뒤 무학대사를 찾아 이곳을 방문하였다 한다. 그 이야기로부터 회룡사라는 절 이름이 유래하였다 한다. | ||
절마당에는 화사한 연꽃과, 발그스레 핀 능소화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몇몇 꽃들이 사찰의 아름다움을 더했다.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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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을 오르는 계단에 서서 절사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나니 어느덧 빗줄기가 잦아 들고 있었다. 산행대장의 지시에 따라, 다들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부는 ‘비도 그치고 했으니 나머지 일행이 산 아래에서 식사하는 동안 산행을 더 하자’고도 했으나 다 같이 움직이는게 좋겠다는 의견에 따라 되돌아 섰다. | ||
내려오는 길에, 체육시설물이 있는 곳에서 자리를 잡고 준비해온 도시락을 펼치고 다같이 식사를 했다. 그 곳은 회룡사 윗쪽의 석굴암으로 올라가는 길목이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일행은 그 동안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다음날이 8.15인 만큼 시기에 맞게 시사에 대한 토론도 하였다. | ![]() | |
식사를 마치고 비 때문에 못다한 산행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려 석굴암에 올랐다. 이곳 석굴암은 김구 선생이 상해로 망명하기 전, 일경을 피해 숨어있던 곳이었다 한다. 김구선생이 이곳에 머물렀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49년 김구 선생의 친필을 받아 이 곳 석굴암 바위에 글을 새겨 넣었다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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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내려온 일행은 호프집으로 가서, 비로 인해 짧게 한 아쉬운 산행의 여운을 풀었다. 뒷풀이가 끝나고 각자 헤어진 뒤, 산악회 집행부는 박문효 선배님을 모시고 따로 모여서 산악회의 발전과 이를 위한 집행조직의 구성에 대해서 토론했다. 기존 일꾼을 위주로 한 집행조직의 보완을 주장한 박문효 선배님과, 회장님의 의견을 존중해서 새로운 인물로 수혈하자는 이태욱 선배의 주장이 배치되는 모양새를 보이기도 했지만 모두들 산악회의 발전을 위해 진지한 고민을 나눈 소중한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다음 산행에는 비가 안왔으면 좋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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