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오르차

아르쎄 2015. 1. 3. 10:32

무박삼일의 일정으로 주말계획을 세웠다.
보스도 휴가차 없는 상태이고, JH도 마침 주말을 자기가 대신 서주겠다고 자청하기에
못이기는 체, 그리던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이번이 아니면 영 기회가 없을 것 같은
아잔타 엘로라 석굴을 탐험을 떠나는 것이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시간은 금요일 밤부터 일요일 밤까지의 시간.

비행기를 타면 쉽게 시간을 만들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구체적인 일정계획에서
그것은 내 착각임을 확인했다.

아우랑가바드는 그리 큰 도시가 아니었기에 델리에서는 하루에 두 편 정도의
직항기가 있었다.

 

금요일 밤 비행기를 타자면 현장을 5시에는 나서야 하는데,
주말 이틀을 비우면서 금요일까지 일찍 나서는 것은 모양새가 좋아 보이지 않을 것이다.

토요일 낮에 떠나는 비행기는 당일에 두 곳 석굴 중 한 곳이라도
볼 수 있을 만큼 시간에 맞춰 떨어지는 비행기가 없다. 
 
나머지 항로는 뭄바이를 경우하여 예닐곱시간은 걸려야 갈 수 있는 것 뿐이다. 

 

아우랑가바드에서 아잔타까지는 3시간 반정도 걸린다했고,
아우랑가바드에서 엘로라까지는 삼십분 정도 걸린다고 했으니
움직이는 시간만 7시간 가까이 되므로 이동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에 
두 곳을 관람하기는 거의불가능하다.

 

어차피 토요일 저녁에 도착해봐야 볼 수 있는 시간은 일요일 하루 뿐이기에
한 곳만이라도 제대로 보는 쪽으로 생각하는 게 낫다.

뭄바이행 비행기도 알아봤으나, 뭄바이에서 아우랑가바드까지 가는 것만 다섯시간은
족히 걸리는 길이기에 그 쪽도 고려되기 힘들다.

 

그러다,
기차와 비행기를 병행하는 방법을 생각해 봤다.
자이푸르나 고아 같은데서 비행기가 있다면 그곳까지 열차로 가서 비행기를 타는 경로를 알아봤지만

역시나 소도시를 이어주는 비행기는 없었다.


어차피 석굴을 보는 것이 일요일에만 가능하다면 구태여 비싼 비행기표와 숙박비를 들여서
갈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아잔타 석굴 근처에 있는 잘가온역까지 가는 기차가 있는지 확인해 봤다.
그랬더니, 밤 9시47분에 로탁역에서 잘가온까지 바로가는 기차가 있었다.
이거야 말로 정말 내가 찾는 적당한 시간대의 기차이다.
이 기차를 타면 잘가온 역에는 토요일 저녁에 도착할 수 있다.
잘가온 역 근처에서 숙소를 잡는다면 일요일 아침부터는 석굴을 감상할 수 있다.

 

그러다 드는 생각에 구태여 잘가온 역에서 1박을 하느니,
가능하다면 중간쯤 되는 정차역에 내려 토요일 낮시간을 보내고 저녁에 열차를 타면 일요일 아침에 떨어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다시 열차 시간을 알아보고는.
과연 기막힌 코스를 찾아 내고 말았다.

 

9시 47분발 열차는 '오르차'의 근처에 있는 짠시역에 토요일 아침 6시 15분에 도착한다.
그럼 나는 낮동안 오르차를 구경하고 느긋하게
저녁 5시 23분에 짠시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일요일 아침 5시 38분에 잘가온에 도착하여
일요일 일정을 시작할 수 있다.

 

그러고 일요일 저녁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델리를 거쳐 이곳 로탁으로 돌아오면
아주 멋진 여행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토록 장거리의 알토란 같은 일정은 나만이 짤 수 있는 것이리라.  


바로 기차표를 예약하고 돌아오는 비행기 표를 알아봤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돌아오는 비행기표가 문제였다.

돌아오는 적당한 직항 비행기가 두대 있었는데, 한대는 오후 3시 35분행 비행기이고 또 한대는 그보다
한시간 정도 뒤에 출발하는 비행기였다.

그런데 먼저의 항공권은 8천루피 정도인데 반해 두번째 것은 그보다 5천루피 정도 비쌌다.
한시간을 더 볼 수 있는 조건으로 5천루피를 더 들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한곳만 볼 경우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비용을 고려하여 

3시 35분발 비행기를 예약했다.

아잔타에 8시 정도에 도착해서 11시정도까지 구경한다면 2시까지는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나는 여행계획을 확정하고 표도 미리 예매했다.

 

-------------------

  

금요일 저녁 8시 40분정도까지 야근까지 하며 느긋하게 시간을 기다렸다.
자전거를 타고 숙소로 와서 샤워를 하고 여행 준비물을 챙겨

9시 20분 집을 나와서 오토렉샤를 탔다.


로탁역에 도착하니 벌써 9시 45분 서둘러 플렛폼으로 갔다.

다행히 아직 열차가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다행히 아니었다. 열차는 두 시간이나 지연되어 플렛폼으로 들어왔다.

늦어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렇게 까지 늦어지지는 않았다.

인도인들은 대단하다.
열차를 기다리는 누구도 아무런 불평이 없다.
이런 경우를 수없이 경험해 봤다는 것을 과시하기라도 하듯이
미리 준비한 모포를 펴고 플랫폼 바닥에 느긋하게 드러누워 수면을 취하며 열차를 기다린다.

 

드디어 열차가 도착했고

오래 기다렸던 차라 몸도 많이 움츠려져 있던 나는,
열차에 오르자 마자 바로 잠을 청했다.

 

얼마 달리지 않은 거 같은데, 열차가 한 역에 정차했는지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비몽사몽 그 소리를 듣고 있는데, 머리에 터번을 쓴 한 시크가 나를 깨웠다.
난 곧 눈을 떠 그와 눈이 마주친 걸 바로 후회했다.
그는 나에게 자신의 가족이 내 아래와 옆 자리에 좌석이 예약되었고 한 자리는 다른 칸에
떨어져 있으니 자리를 좀 바꿔 달라고 부탁했다. 

 

몸도 피곤하고 그냥 누워버릴까 하다가, 그 것이 나의 경우 일수도 있겠다 싶어
일어나 자리를 정리하고 그를 따라갔다.
당초 내자리는 비록 AC3 등급이었지만 통로쪽의 2층 침대였던지라

앉아 있을 만큼  높이가 확보된 자리였는데,

옮긴 곳은 3층으로 되어 있어 아까보다는 훨씬 불편한 자리었다.
다시 모포를 펴고 자리를 정리하는 번거로움을 겪고 자리에 누웠다.
그 사람은 내가 누울때까지 한 참 지켜보다가 누운 나를 톡톡치더니,
내 손을 잡고 합장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연거푸 했다.
몸이 피곤하여 그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다시 드러누웠다.

 

그렇게 아침이 되고, 멀리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시간도 도착할 때가 된 듯 했고,
오르차에서 떠오르는 해가 그렇게 멋지다고 해서 가방을 챙겨
객차와 객차 사이의 공간으로 나왔다.
멀리서 붉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비록 열차의 움직이는 방향에서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볼 수는 없었지만,
낯선 곳에서의 여명을 느끼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벌써 도착해야할 시간이 지났건만 열차는 계속달린다.
열차는 예정보다 2시간 여 늦게 도착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객실에서 더 자는 건데.'

 

암튼 짠시역에 그렇게 도착했고,
수 많은 오토릭샤 기사들이 호객행위를 하는 역을 빠져나왔다.

리쉬케쉬에서 처럼 오토바이를 빌려볼까 생각하고는 여기저기 물어봤지만
그런 곳이 없다는 얘기만 들었다.

 

한참 걸어가다는데 오토릭샤가 나를 쫓아왔다. 
오르차까지 2백루피를 달라고 했다. 난 이렇게 이른 아침에 서둘러 오토릭샤를 타고 오르차에 갈 필요를
느끼지 않았으므로 타지 않겠다고 햇다.

그러나 끈질기 오토릭샤 기사의 유혹에 결국 백이십루피에 합의를 보고 오토릭샤에 올랐다.

 

오르차까지는
2십여분 걸린다했지만 그보다 약간 더 걸린 듯 하다.

 

 

 

동네를 들어서는 두개의 문을 지나자 왼쪽으로 멋진 성이 보였다.
오르차 성이었다.

 

아직 9시가 안된 시간.
이렇게 아침일찍 부터 문을 열까(출입이 허용될까)하는 의심으로 느릿느릿 성과 연결된 다리를 건넜다.

비어 있는 듯 보였던 매표소에는 직원이 있었다.
팬카드를 꺼내 보여줬더니 입장료 10루피만 요구했다.
카메라를 가지고 있냐고 물었다.
평소같았으면 없다고 대답했을 테지만 입장료도 현지인들 기준으로 했는데,
그정도 추가 비용 내는 정도는 아깝지 않았다.
촬영권으로 25루피를 추가로 내고는 성안으로 들어왔다.

 

 

해자에 둘러싸인 오르차 성은 고풍스런 멋을 지니고 있었다.

 

 

 

오르차 성은 크게 세개의 성으로 나뉜다.

다리를 건너 처음 만나게 되는 성이 웅장한 라즈마할, 그리고 중간에 쉬시마할,

그리고 가장 뒷편 (사실 과거에는 이 곳이 앞쪽이고 건너온 다리가 후문이었다 한다.)이

고풍스런 멋을 지닌 제항기르 마할.

 

 

이 곳은 1531년 분넬라 왕조가 도읍을 정한 곳이라 한다.

이 왕국이 역사에서 사라진 이야기는 대략 이러하다.

 

무굴제국의 악바르 왕 시기에 큰아들 제항기르가 아버지를 퇴위시키고 자신이 권좌의 앉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 쿠데타가 실패하자 이곳으로 숨어 들어왔다.

그 때, 이곳의 왕인 비르싱데오가 그를 보호해 주었고, 그덕에 향후 악바르 왕이 죽은뒤

왕위에 오른 제항기르는 이 왕조와의 인연으로 자주 이곳을 찾는 등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제항기르 사후 샤자한이 왕이 된 뒤에는 비르싱데오 와의 관계가 악화되었는데,

결국 1627년 샤자한은 자신의 아들, 당시 13세인 아우랑제브로 하여금 이 왕국을 멸망시켰다.   

 
산책로를 따라 돌아 쉬시마할 앞마당으로 들어갔는데, 이 곳엔 호텔이 들어서서 영업을 하고 있었다.
유적을 이용한 호텔이라 시간이 허락된다면 언젠가 이곳에서 머물러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 마당 우측으로 성안으로 진입하는 길이 있어
그길을 따라 성안으로 올라갔다.

 

 

 

 

 

내부적인 구조는 여타의 다른 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슬람 제국의 여타의 성들과 마찬가지로, 장방형으로 큰 평면에 각 귀퉁이에 돔형의 첨탑이 있고
각 첨탑 사이는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높이 올라 갈수록 내려보이는 전망이 좋았다.
성의 창에 걸터 앉아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창과 창대가 돌의 짜맞춤으로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는데,
어찌 무너지지 않고 현재까지 버티고 있는지 신기했다.

 

볕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창대에 앉아
어제 저녁 챙겨온 초코파이를 먹었다.

 

 

저멀리 개천이 보였다.
인도에서는 보기 힘든 바위와 돌들로 이뤄진 계곡이었다.
지평선이 끝없이 이어진 일반적 인도의 풍경에서 저런 계곡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성을 만든 돌도 저기에서 나온게 아닌가 싶다.
드러난 계곡에 저렇듯 돌이 많은데,
평평한 대지의 바로 아래가 바로 저와같은 암석으로 이뤄졌을 것이고,
이 돌들을 기반으로 이와 같은 성을 만들 수 있었으리라.

 

그것이 곧 이 한적한 오르차가 과거 이렇게 웅장한 건축물을 남길 수 있는 배경이 되었으리라.

성을 내려와 산책로를 따라 입구의 반대편으로 갔다.
폐허가 된 유적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 폐허에서 한 참을 머물며
그 옛날 번성했던 이 곳을 상상해 보았다.

 

뒤 쪽에서 인도의 전통복장을 한 남자와 어린 아이가 오고 있었다.
내가 개천 앞 돌 장벽의 막힌 통로에 멈춰섰는데,
그들은 나무로 막아 놓은 가림대를 제거하고 거길 지나 개천으로 내려갔다.

 

  

 

 

 


나도 그들을 따라 개천으로 내려갔다.
그들이 개천 건너 저쪽편으로 사라지고, 나는 개천을 따라 마을 쪽으로 이동했다.

건기라 그런지 여기저기 물은 고여 있었지만 흐름이 보일만큼 수량이 많지 않았고,
돌에 말라 붙은 이끼 등으로 인해서 아주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비가 많이 오는 계절에는 맑게 소리내어 흐르는 물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계절에 오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개천을 따라 걸어 내려갔다.

 

혹시나 나올지 모르는 코브라를 쫒기 위해서 노래를 부르며,
가는 방향의 돌과 돌 사이를 긴장된 시선으로 훑으며 걸었다.

 

이 곳의 돌은 오랜기간 이곳까지 밀려오느라
충분히 마모가 된 탓으로, 생긴 모양이 동글동글하고 예뻤다.
몇 번씩 돌을 줍고 손에 든 돌을 새돌로 바꿔 들고 하면서 걸었다.

 

 

큰 길 가까이 오자 원숭이 들이 많이 보였다.
어떤 원숭이는 징검다리를 건너는 내 옆으로 아주 태연하게 지나치기도 했다.

 

저멀리 한 무리의 여인네들이 몸을 씻고 있었다.
나이든 여자는 가슴을 내놓은 채로 씻고 있었고
여자 아이들은 다리를 걷고 물에 들어가 머리를 감고 있었다.

 

물이 합류하는 곳에 이르자
상당한 량의 물이 흐르고 있었다.  

베트와(Betwa) 강이다.

지금 지나온 개천은 물의 주류가 아닌 그냥 계곡이었던 것이고

주류는 바로 이곳이였다.

 

내 고향 개천 처럼 아주 맑지는 않았지만 인도치고는 최상이었다.

어떤이는 빨래를 하고, 어떤 이는 결코 멱을 즐길만한 날씨가 아니었음에도
멱을 감기도 했다.

 

어떤 이가 여자아이가 나랑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해서 꼬마를 감싸앉고 다정한 포즈를 취해 주었다.

인도인들을 어디를 가나 사진찍기를 좋아한다.

더구나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은 대단한 거 같다.

 

베트와 강을 뒤로 하고 다시 시내로 들어섰다.

오늘 길에 초등학생인 듯한 아이들이 길바닥에 앉아 숙제를 하는 듯 책과 노트를 펼쳐놓고 있다.

 

지나가는 청년들이 나더라 사진을 찍어 달래서 찍어줬다.

지네들도 폰이 있을 텐데, 왜 하필 나더러 찍어달라는지?...

 

한글로쓰인 식당 간판도 눈에 들어왔다.

왼쪽의 시장으로 들어갔다.

 

좁은 시골이지만 이곳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이곳에도 역시 한글 간판의 식당이 더러 보였다.

아마도 한국의 여행객들이 써준 글들이 아닐까 싶다.

 

▲ 람라즈 만디르 사원 

 

람라즈 만디르 사원 왼쪽에 고풍스런 사원이 눈이 들어왔다.

차뚜르 부즈 템플.

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사원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었다.

 

내부는 저 쪽 주출입구로 들어오는 빛으로 인해

그나마 어두음을 면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제복을 입은 경비원인 듯한 사나이가 반가운 체 하며 나를 맞았다.

괜한 친절에 공짜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가 묻는 말에 무표정하게 대꾸해 줬다.

 

그가 위로 올라가고 싶지 않냐고 물었다. 

이 사원은 홀이 볼 것의 전부인 것으로 보였기에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에 호기심이 생겼다.

 

좋다고 했더니, 그는 캐리비안 해적의 조니뎁과 같은 사람에게 

내 안내를 맡겼다.

 

제복의 사나이는 작은 문을 열쇠로 열어주었고,

그 '조니뎁'은 렌턴을 챙겨 앞장 섰다.

계단은 작고 비좁고 경사가 컸으며, 내부는 상당히 어두웠다.

 

 

조니뎁은 약한 렌턴의 불빛을 나를 배려해서 뒤쪽으로 비춰주면서 앞장서 걸었다.

 

한층 한층 올라설 때마다 그는 밖으로 보이는 경치를 감상하라며

시간을 주었고,

나는 그의 배려에 눈을 즐기며 천천히 오를 수 있었다. 

 

 

드디어 오를 수 있는 곳까지 올랐다.

저 멀리 아까 갔던 오르차 성이 멋진 폼으로 서있다.

마치 영화에 나오는 왕국처럼.

 

 

한참을 있다가 그가 내게 다가와서 말을 건넨다.

그 말을 알아 들을 수 없었지만 난 그의 몸짓으로 그가 무슨말을 하는지

곧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는 담배피는 시늉을 했고,

종이로 겹겹히 싼 것을 풀어헤쳐 마른 풀 같은 것을  내게 보여주었다.

 

본들 그게 무엇인지 난 알 수가 없었지만

느낌으로 대마라는 것을 알았다.

 

웃으며 그의 기분을 그르치지 않게 사양하자 그도 더는 권하지 않았다.

 

건물을 내려와서 나는 그에게 팁으로 100루피 주는 것으로

대마 구입을 대신했다.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시간도 시간이고, 어디 앉아서 쉬고 싶어

아침에 보았던 , 오르차 성으로 가는 다리를 건너기 전에

조용한 식당이 몇군데 있었던 것을 생각하고는 그곳으로 갔다.

 

식당앞을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한 곳에서 동양인 남녀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남자도 한국 사람이 아닌 듯 했지만

여자는 머리를 짧게 깎고 귀걸이를 한 것이 한국인의 일반적인 패션은 아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들이 나를 손짓으로 불렀다.

나는 그들 테이블의 빈자리에 가서 앉고 인사를 했다.

남자는 일본인이라고 했다. 

 

내 소개를 했다. "와타시와 000 데스, 아나따와?"

남자는 자신을 "후꾸로 히로아끼"라 소개했고

아직 대답이 없는 여자에게 나는 "아나따노 나마에와?" 라고 다시 물었다.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 풋 웃는다.  "사실은 한국사람이에요."

 

그들도 바로 좀전에 이곳에서 만났다고 했다.

여자는 이곳에서 사흘 정도 머물렀고, 인도에 온지는 한달여 됐다했고,

남자는 어제 이곳에 왔고, 저녁에 이곳을 떠나 카주라호로 갈 예정이라 했다.

 

한참 얘기를 나눈 후 남자는 짧은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미리 일어섰다.

그전에 사진을 몇장 찍는다.

나는 그의 카메라를 뺐어서 그와 그녀를 함께 찍어주었다.

 

그가 떠난 뒤 남은 우리는 좀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온지 사흘이 됐지만 아직 베트와 강을 보지 못했다는 그녀의 얘기에

함께 강을 보러 가기로 했다.

 

그녀와 가는 길에 후쿠로를 다시 만났다.

자연히 우리는 셋이서 함께 강으로 갔다.

 

다리위에서 강을 구경하고는 아래 쪽에 보이는 가트로 갔다.

가트 옆에는 무덤으로 보이는 건물이 몇개 있었다.

 

그 안으로 들어갔다.

좁고 어두운 계단을 따라 몇 개의 층을 올라가자

주변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음 같았으면 이곳에서 야영하며 며칠을 머물렀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건물은 공원으로 꾸며 놓은 바로 옆의 마하라자 능묘군에 포함되는 무덤인 듯 했다.  

 

이 무덤은 공원의 무덤보다 훨씬 풍화가 심하게 되어 있었는데,

공원 울타리 밖에 있는 무덤이라 관리가 되지 못해 그런게 아니라면

 오히려 마하라자 능묘들 보다 더 오래되고 고풍스럽게 보였다. 

 

입장료를 받지 않고, 이렇게 버려진 오래된 건물(무덤)을 발견하여

여기까지 올라온 것이 내겐 큰 행운이었다.

 

그 곳을 내려와서 바로 옆의 마하라자 능묘군에 들어갔다.

오르차 성에서 끊은 입장료를 보여주자 나와 후쿠로는 입장이 허락되었지만

입장권이 없던 NH는 별도로 요금을 내야 했다.

 

이미 위에서 본 풍경이라 별다를 것은 없었고,

이내 우리는 그 곳을 빠져 나왔다.

 

후쿠로가 락슈미 사원을 가자며,

자신이 돈을 낼테니 오토렉샤를 타자고 했다.

내가 '거리가 얼마 안되니 걸어가자'고 하니, 마지 못해 내말을 쫓았다.

그런 그에게 5분이면 갈 수 있다고 약속했다.

 

사실 난 차뚜르부즈사원을 락슈미 사원으로 오인하고 그리로 안내했는데,

락슈미 사원은 그곳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잘못 안내한 내가 미안해서 오토렉샤를 타고 가자고 했다.

 

후쿠로가 산 음료수를 하나씩 들고 오토릭샤를 타고 락슈미 나라얀 사원으로 갔다.

 

락슈미 사원은 길 끝에 위치한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사원에 들어가기 전 사원앞에 앉아 음료를 마시며, 언덕 아래로 보이는 경치를 감상했다.

여행 중에 이런 여유를 누릴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락슈미 사원 내부의 벽과 천정에는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이해가 부족해서 의미하는 바는 잘 알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위층에 오르자 돔의 첨탑안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었다.

계단은 돌로 짜맞춰져 있었는데, 좁고 난간이 없었으며 높이도 제법 높아

오르다가 실수하면 큰 낭패를 당할 수도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그 계단을 올라 위층으로 올라갔다.

후쿠로도 따라 올랐지만 NH는 낙상을 우려해 따라 오지 않았다.

한층이 더 있었다. 위가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웠다.

오르는 계단이 또 있었지만. 후쿠로는 여기서 멈췄다. 

 

거기가 마지막인 듯했다. 창은 돌로 막혀 외부의 빛을 차단하여 방은 온통 어두웠다.

이런 어두운 방이 왜 필요했던 것인지.

 

사원을 나오자 4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후쿠로는 먼저 택시를 타고 카주라호로 출발했다.

 

이젠 나와 NH, 둘만 남았다.

4시 반, 나도 슬슬 움직여야 될 시간.

NH가 먼길 가는데 식사는 하고 가야 되지 않겠냐고 물었다.

딱히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그녀에게 좋은 데 있으면 안내하라고 했다.

그녀는 길거리 음식도 괜찮겠냐고 물었고,

나는 못먹는 게 아니라면 시도해 보겠다고 했다.

 

같이 길을 걷다고 포장 마차 같은데서

감자를 으개고 양념을 넣어 나뭇잎에 싸주는 음식을 먹었다.

1인당 20루피씩했다.

추가 하는 양념을 말리고 싶었지만 그녀도 그러지 않아 참았다.

결과는?

그런데로 먹을 만 했다.

 

그녀의 배웅을 받으며 오토릭샤에 올랐다.

아침에 120루피에 흥정하고 150루피에 온 것을 감안해

오토릭샤 기사들에게 150루피를 제시했다.

다들 200루피는 받아야 한다고 했다.

NH 또한 200루피가 일반적인 금액이라고 거들자 나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녀와 악수하고 헤어지는데,

그녀는,
이미 출발하는 오토릭샤를 잡아세우더니 한번 더 내 손을 잡는다.

그러고는 '꼭 이메일을 보내달라'고 한다.

 

누군가를 만나고,

언젠가는 이별을 겪게 되는 것이 정해진 이치라 하지만,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닐까 싶다. 

 

 

짠시역에는 차시간에 조금 늦어 도착했다.

다급하게 역무원에게 차를 놓친 것인지를 묻자, 다행히 기차는 좀 늦을거라 한다.

5시 23분에 도착했어야 할 기차는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기차는 소식이 없다.

 

핸드폰 배터리가 다 되어 여기저기 충전할 곳을 찾던 나는

플렛폼 계단아래있는 사무실에 들어가서 양해를 구했다.

나에게 짜이를 베푸는 그들의 잔잔한 친절에 감동한다.

 

 

 

기다리다 못한 나는 열시가 넘어 대합실로 가 보았다. 전광판에 내 기차가 10시 반쯤에 도착할 거라고 표기되었다. 다섯시간 연착!

 

시간을 계산해 보니, 내일 잘가온 역에 도착한다해도 11시가 다 되어야 가능하고

그렇다면 예매해둔 3시 35분 아우랑가바드에서 델리로 가는 비행기를 겨우 탈 수 있는

시간 밖에 되지않았다.

그럼 거기까지 가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운이 나빠 비행기마져 놓치면 그야말로 최악이다.

 

판단이 서자, 난 얼른 델리행 열차를 무작정 탔다.

복잡한 슬리퍼 칸에 있다가 다음 정차역에 내려 AC칸으로 옮겨 빈자리에 누었다.

 

한참 뒤 역무원이 내게 목적지가 어디냐며 표를 보자고 했다.

난 사연을 얘기하고, AC 칸 좌석을 마련해 달라고 그에게 청했더니,

그는 무임승차 벌금을 포함하여 1500루피를 내라고 했다.

 

돈을 꺼내자, 그가 다른 제안을 한다. 

영수증이 필요없다면 500루피만 내라고.

 

당연히 고민이 필요없는 상황.

인도는 뒷돈이 통하는 곳임을 새삼 깨달으며 잠을 청한다.

델리에 내리니 안개가 짙다.

ISBT에서 로탁행 버스를 탔는데, 입구에서 만난 인도인이 한글이 적힌 점퍼를 입고있다.

괜히 정감이 간다.

 

 

 

 

  

언젠가 산토스가 자신의 누나도 안개로 인해 12시간을 연착했다고 했던 생각이 났다.

인도의 열차는 그나마 시스템이 안정적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참에 또하나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