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찬디갈, 르꼬르뷔지에가 계획한 도시

아르쎄 2015. 2. 1. 01:55

지저분하고 무질서한 인도의 여느 거리와 달리, 널찍한 도로 좌우 통행의 질서가 잘 지켜지는 곳이 바로 챤디갈이다.

Rock Garden을 제외하고는 딱히 볼만한 것은 없다. 하지만 건축을 전공하거나 건축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현대건축의 거장인 르 꼬르뷔지에의 흔적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라 한번 방문할 만하다.

밤차로 챤디갈에 도착했다. 챤디갈은 펀자브주와 하리아나주의 수도이다. 원래는 두 주 모두 펀자브에 속해 있었다고 한다. 펀자브 주는 한 때 란지트 싱이 건설한 시크교 왕국이 있던 곳인데, 이 왕국은 영국에 의해 멸망하기 전까지 인도에서의 마지막 독립국으로 존재하던 곳이다.

겨울 새벽 5시경 도착한 찬디갈은 추웠다. 여명이 곧 밝아 올 텐데 어디 호텔을 찾아들기도 그렇고

렉샤를 타고 일단 법원 근처로 갔다. 추웠다. 어디 쉴 곳도 없었다. 목적지를 바꿔 렉샤 기사에게 호텔이 있는 곳으로 가자고 했다. 렉샤비용에 대한 실강이로 또 떨어야 했다. 첫 호텔에 가니 2000루피를 달랜다. 여명을 밝기까지 겨우 몇 시간 추위를 피하기 위한 비용으론 너무 아깝다.

그 곳을 나와서 만난 렉샤 기사의 안내로 다른 저렴한 호텔을 찾아갔다. 처음 간 곳은 차마 호텔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복도 바닥에 사람들이 그냥 누워있었다. 방이 없다며 한 켠에 있는 쇼파를 비워주며 그 곳에 앉으라 했다. 도저히 그곳에 머물 수가 없어 그냥 나왔다.

두 번째 호텔. 700루피를 달라는 것을 500루피로 흥정하고는 방으로 갔다. 예상했던 거 이상으로 열악했다. 더 다녀봐야 상황이 좋을 거 같진 않았다. 찬바람을 쐬며 렉샤를 타고 한참을 돌아다닌 탓에 몸에 한기가 들어 힘들었다. 아까 2천루피짜리 호텔에 들지 않은 것을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차라리 감옥이 나을 거 같았다. 천정과 벽은 제대로 미장도 되지 않은 듯 거칠었고 페인트로 칠해진 벽엔 때가 꼬질꼬질 묻어있고 천정 귀퉁이에는 아주 오래 전에 살았을 듯한 거미가 쳐둔 거미줄마저 보인다.

바닥에는 먼지가 뭉쳐서 굴러다니고 청결상태로 보아 바퀴벌레나 쥐가 있어야 어울릴 듯 했다. 침대 시트는 찌든 때로 보아 갈은지가 몇 달은 되어 보였다. 한참을 서서 침대를 바라봤다. 방안의 온도는 밖과 다를 바 없었지만 이 대로 그냥 서 있을 수는 없다. 외투까지 그대로 입고 다리 위에만 모포를 엊은 채 잠을 청해본다. 몸이 덜덜 떨린다.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10시쯤 일어났다. 인도에서 저렴한 호텔은 정말 다시 가지 않을 거라는 다짐을 하고 그 곳을 나왔다.

사람들이 작은 불을 피워놓고 쬐고 있었다. 그들에게 가서 같이 쬐고 싶었지만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는 수고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렉샤를 잡아타고 락가든으로 가자고 했다. 락 가든 입구에 내렸다. 나이든 두 분이 작은 불을 피워 놓고 쬐고 있었다. 나도 그 옆으로 가서 불을 쬐었다. 정말 따뜻했다.

원래 이공원의 이름은 넥 챤드 락 가든이다. 찬디갈을 만들 당시 토목직이었던 넥 챤드라는 사람이 도시를 만들고 남은 파편들을 모아 10년 동안 정부의 지원을 받아가며 만든 공원이라 한다. 하지만 넥 챤드 락 가든이라고 하면 오토렉샤 기사들이 잘 못 알아듣는다. 그냥 락 가든이라고 하면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인다.   

표를 끊고 들어가니 입구 바로 근처에 식당이 있었다. 공간을 시각적으로 분리해서 제법 재미있었다. 돌을 벽에 촘촘이 박아 만든 담장과 무슨 모양새나 한 듯한 큰 돌들이 인상적이었다.

고개를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는 통로를 지나 들어가니 원형으로 생긴 건물이 나왔다. 혹시나 까페 같은 곳이면 차 한잔 하면서 몸을 녹일까 하는 생각으로 둘러보았지만 식당은 실외에만 테이블이 있었다.   

본격적으로 입구를 따라 들어갔다. 좁아졌다 넓어졌다 하면서 변화되는 길은 항상 새로웠다. 계속 이어지는 공간들은 이어지는 다음 공간을 시각적으로 차단시킴으로써 예측하지 못하게 했다.

벽에는 특이한 작은 돌들을 붙여 놓았는데, 그 하나하나가 모두 특이하고 개성있어 보였고, 다른 공간으로 가면 그 종류 또한 달라졌다. 콘크리트 벽으로 이뤄진 담장, 장독대 같은 도기로 이뤄진 담장, 타일로 장식된 담장.

찬디갈이 직선의 교차로 이뤄진 모던한 질서를 가진 예측 가능한 도시라면, 이 공원은 곡선과 변화로 이뤄진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을 통해 찬디갈은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려 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작은 통로와 손바닥 정원 같은 것을 반복해서 지나다가 폭포가 있는 제법 넓은 곳에 이른다. 마치 계곡처럼 인공적으로 만든 구조물은 신비의 세계에 온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여기가 이 공원의 중심부이다. 다시 샛길을 따라 올라가면 아까 폭포가 보이는 넓은 공원을 한바퀴 감아 돌아 가게 된다. 역시 인공이지만 자연을 느끼게 하는 신선한 경험을 느끼게 한다.

나가는 길에는 각 공간에서 조각상들을 만나게 된다. 수많은 사람과 짐승들, 추상화 되고 때로는 구체적인 표정들, 그리고 서로 다른 인종들과 카스트들을 묘사한 듯 그 다양함과 숫자에 놀라게 된다.

공원을 나와서 물어물어 법원으로 걸어갔다. 경찰이 저 멀리서 나를 불렀다. 일요일에는 문을 열지 않으니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그래도 방법이 없겠냐며 사정하자 저 쪽 어딘가에 가서 확인을 받아오면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가르쳐준 곳으로 갔지만 역시나 그들에게도 똑 같은 말을 들어야 했다. 법원근처의 관공서 건물을 먼발치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오후 2시경 출발하는 기차표를 끊었지만 시간이 남아 시티박물관에 들렀다. 어디가 어딘지 몰라 큰 건물에 가서 입장권을 끊으려고 500루피를 내밀었더니 거스름돈이 없다며 받지 않는다. 나는 기분 나쁜 표정을 짓고는 그냥 나와버렸다.

막 나오는데 누군가 저쪽에 건축 박물관이 있다며 알려준다. 원래 가고자 했던 르꼬르뷔지에의 박물관이었다. 작은 박물관은 3층의 작은 건물로 심플하면서도 모던하고 그러면서도 단순하지만은 않은 디자인으로 꼬르뷔지에의 작품을 닮았다. 내부에는 그의 사진과 도시계획 초안 스케치들, 그리고 그가 설계한 가구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르꼬르뷔지에는 많은 도시를 구상하긴 했지만 실제 실현한 것은 이곳 찬디갈이 유일하다. 그런 의미에서 찬디갈은 꼬르뷔지에를 추종하는 이들에게는 매우 의미있는 도시이다.

짧은 일정의 찬디갈에 많이 다녀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구태여 이 곳에서 유명하다는 수크나 호수가 궁금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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