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천사 조나단’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그는 흔히 천사의 모습으로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날개가 달린 천사가 아니었으며, (때로는 미지의 힘을 빌리기는 했지만) 스스로 기적을 행하는 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튼 그는 기적을 만들어 내는 진짜 천사였다.
우리는 젊거나 혹은 아기의 모습에 날개 달린 천사를 상상한다. 사람들은 그런 천사를 진짜 본다면 신을 믿을 거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본 사람이 드무니 신의 세계도 내세의 세계도 믿기 어려울 수 밖에…
하지만 생각해 본다. 진짜 영화에서처럼 천사들이 날아다니고 사람들이 그런 천사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면… 그러면 신의 세계를, 내세의 존재를 믿을까?
과거 우리가 자연현상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분석하려는 생각을 갖지 못했을 때, 모든 현상들을 신비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번개와 천둥이 치면 신의 분노로, 날씨가 화창하면 신이 축복하는 것으로, 달이 태양을 가리면 매우 불길한 징조로…
인간들은 그러한 자연현상을 신이 인간에게 하는 의사전달의 한 방법으로 여겼고, 그러면서 그에 응답하여 굿을 하거나, 제사를 지내거나 하여 인간 또한 신에게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코자 했던 것이다. (이 것은 미지의 존재인 천사와 대화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자연 현상에 대해, 연약한 존재인 인간은 신의 존재를 인정하며 그에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과학적 해석이 시도된 이후에 와서는 이러한 모든 현상들을 받아들이는 인간들의 자세는 극적으로 변했다. 모든 현상들에 대해서 과학적 분석을 시도했고, 시도하려 하고 있으며, 심지어 과학으로 해석하지 못하는 많은 현상들 조차도 ‘단지 아직은 밝혀내지 못했을 뿐’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중력의 법칙을 거스리는 천사들이 날아다니며 우리에게 신의 존재를 얘기하고 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보자.
아마 사람들은 천사들이 날아 다니는 사실 또한 아직은 과학적으로 풀어내지 못한 현상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고 신의 메시지를 인간들에게 전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특정 종교를 믿는 그들 족속의 집단성격 탓 정도로 해석할 것이다. 메시지의 내용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아무튼 인간들의 우월한 자아는, 천사들이 주변을 날아다닌다고 한들 천사들의 존재를 그리 비중 있게(경외하며) 보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신이 어떠한 모습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한들 쉽게 믿으려 들지 않을 것이다. 밤하늘 우주의 존재를 보여주며 인간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를 인식시켜 주어도 말이다.
정말 어쩌면, 신은 우리에게 수 많은 ‘천사 조나단’을 내려 보냈을지도 모른다. 천사들을 내려 보내어 우리를 구원하려 했지만 에고에 갇힌 우리의 존재가 한사코 거부했는지도.
주변에 아주 가까이 있지만 물질과 세속의 욕망에 눈이 먼 우리가 그들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지도.
가만히 생각해 본다. 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천사의 존재를.
마음을 울리는 한편의 영화, 죽어가는 것들, 남을 돕고 선행하는 이웃, 내 안의 양심, 선행에의 의지, 바닷가 하늘을 나는 갈매기…
신은 다양한 모습으로 수많은 천사들을 내려 보냈던 것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내 주위의 천사들을 찾아본다.
죽음이 끝임을 인정하는 물질 사회의 과학으로는 감히 설명할 수 없는, 내면에서 일어나는 신비의 현상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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