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퇴근길 남서쪽 하늘엔 예쁜 반달이 떠 있었다.
아래쪽이 불룩한 상현달이었다.
동양화에 여백이 반드시 필요하듯 우리네 정서에는 뭔가 부족함이 있어야 제 맛이 나는 듯 하다.
그래서인지 둥글고 알이 꽉 찬 보름달 보다, 나는 상현달을 오히려 더 좋아한다.
상현달은 일주일 후에는 보름달로 자랄 것이고, 그 때까지 나는 보름달을 기대하며 마음이 설레인다.
예로부터 음력을 지켜온 우리 조상의 유전자가 깊이 배어서 인지, 나의 심리적 바이오리듬도 달의 주기를 따르는 듯 하다.
삼국시대가 끝날 무렵, 당시 한 예언가는 백제와 신라의 운명을 달에 비유해 예견했다고 한다.
백제는 곧 사그러질 보름달이고, 신라는 점점 밝아질 상현달이라는 것.
초저녁에 이미 남쪽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상현달은 매일 뜨는 시간이 조금씩 늦어져 일주일 후에는 해가 진 직후에 꽉 찬 보름달로 떠오른다.
달은 하지 무렵에 가장 높이 떠오르긴 하지만 요즘 같은 겨울철에는 그 달 모양이 더 선명하고 밝다. 그래서 정월의 보름달을 대보름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실행에 자주 옮기진 못하지만 상현달을 보면서 ‘보름이 되면 야간산행을 해야겠다’고 계획한다. 자정 무렵 산 정상에서, 팔베개하고 누워서 가장 높이 곳에 떠 있는 보름달을 보는 그 맛이란…
행여나 벗이 있어, 달빛 아래 함께 앉아 소주잔이라도 나눈다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순간이 된다.
다가오는 보름은 월요일이다. 현실적으로 야간 산행이 쉽지 않다. 내년 정월대보름에는 달을 보리라 막연히 생각해 본다. 그 날은 날씨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