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로탁(Rohtak, Haryana, India)에서 이발을 하다

아르쎄 2014. 5. 30. 02:35

인도에 와서 처음으로 발톱을 깎았다.
사실 손톱을 첨 깎은 것도 겨우 지난 주였다.
그러고 보면 시간이 엄청 많이 흐른 거 같은데도 사실은 얼마 지나지 않은 것이다.

 

어젠 머리털을 잘랐다.
현장서 안전모를 쓰고 다닐 때는 귀를 덮는 긴 머리카락이 성가실 뿐더러,
이곳의 더운 날씨에도 긴 머리가 불편하기 그지 없다.

 

머리를 짧게 깎는 건 내게 별로 어울리지 않지만
예쁘게 살짝 다듬는 것도 별로 경제적인 게 못된다.

누가 딱히 봐줄 사람도 없는 인도에서 그럴 필요까진 없는 것이다.
다른 이들은 휴가때 한국들어가서 깎겠다며 참는다. 
하지만 난 어차피 귀국까지는 제법 시간이 남아 있다.

 

그래도 생각같아선 주말까지 기다렸다가 델리로 나가서 퍼머라도 했으면 했지만,
로탁에도 괜찮은 미용실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현지 직원에게 위치를 물어 저녁에 찾아갔다.

 

알려준 위치에는 작은 이발소가 하나 있었다.
초라한 모양새에 처음엔 그냥 지나쳤지만
한참 거리를 배회한 후에 그 곳을 다시 찾았다.

 

머리에 대한 기대는 별로 없었지만,
왠지 어릴적 시골 이발소의 향취를 불러오는 거 같은
그런게 나를 이끌지 않았을까 싶다.

 

이발소의 수준은 내가 아주 어릴적에 시골서 경험했던
그 어떤 이발소 보다 초라하고 어설펐다.

세면대는 머리를 감기에는 너무 비좁고 또한 지저분 했으며,
문을 열어둔 실내는 저녁이지만 아직은 뜨거운 바깥 열기를 그대로 들이고 있었다.

 

나는 귀만 드러내게 하고 머리는 절대 짧게 자르지 말라고 일러주었다.
그는 알아듣는지 마는지 고개를 약간 갸웃하고는 자르기 시작했다.

 

이발사는 머리를 자르는 가위질 말고도 헛가위질을 해댔다.
그 헛가위질은 어릴적 시골의 이발사 아저씨와 꼭 닮았다.
그 헛가위질하는 소리가 이발사의 솜씨를 엄청 돋보이도록 느끼게 했다.

 

옆머리는 귀를 들어낼 만큼 자르고 윗머리는 살짝만 다듬는가 싶더니
가위를 내 이마에 수평으로 대고는 그만 "싹뚝".

 

호섭이?!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었다.
난 오만 상을 찌푸렸으나,
그 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이발사 아저씨가 무안해 할까봐, 곧 억지 웃음을 지었다.

 

얼마냐고 물으니 30루피라고 했다.
한국돈으로 600원이 못되는 가치다.
잔돈이 없어 100루피 짜리를 내밀었다.
거슬러 주는 70루피를 받기가 미안스러웠다. 

 

이발을 마치고 그 아저씨와 핸드폰 카메라로 기념촬영까지 마치고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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