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퇴근길_반지 파는 아저씨

아르쎄 2011. 1. 20. 17:31

 

어젠 좀 늦게 퇴근을 했다.
매일 저녁 그러하듯 지하철 3호선을 타고 4호선을 갈아타기 위해 충무로 역에서 내릴 때쯤, 저 쪽 열차 다음 칸에서부터 낯설지 않은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반지 사세요. 저희가 직접 만든 반지예요”

 

내가 내리는 것과 동시에, 목소리의 주인공은 저 쪽 칸에서 내가 탔던 칸으로 건너 오고 있었다. 플랫폼에 서서 열차가 떠날 때까지 차창을 통해 열차안의 그를 지켜 보았다.

아마 한 정거장만 일찍 그 분을 만났더라면 나는 그 분에게서 반지를 샀을 것이다.

 

내가 지방 현장으로 내려가기 전이니까 적어도 6~7년은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 때 휘경동에 살았으니 1호선을 타고 있었을 것이고…
그를 봤던 건 회기역에 거의 와서 였던 것 같다. 그날도 그는 지금과 같은 멘트로 반지를 팔고 있었다.

 

“다른 데는 없는 반지예요. 저희 장애인들이 직접 만들었으니까요”

 

그는 사고로 그랬는지, 아니면 원래부터 기형적인 모습으로 태어났는지 알 순 없었지만 양쪽 다리는 일반인의 허벅지 길이만큼 밖에 되지 않았으며, 걸음이 느리고 옆걸음질 하는 모습으로 볼 때 움직임도 자유롭지 못한 듯 했다. 

 

반지는 금속재질로 만들어졌는데, 가는 링에 커다란 꽃 장식이 달려 있었다. 어른들이 끼기에는 좀 부담스러웠지만 소박한 모양새가 마음에 들어 하나를 사서 딸아이에게 선물했다.

 

그 때 그 분은 그나마 밝은 모습이었던 것 같았는데, 오늘 본 그 분은 몇 년 사이 얼굴의 주름도 많이 늘었고 무엇보다 확연히 눈에 띄는 것은 하얗게 센 그의 머리카락이었다.

 

'살림 살이는 좀 나아지셨는지...?'

 

이런 세상에서 정직하게 살아가는 그 누구의 살림살이가 나아졌겠냐 마는 삶의 다른 대안이 없을 듯한 저런 분들이나마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 그 반지는 잃어 버리고 없지만 딸아이는 언젠가 그 반지 얘기를 했었던 것 같다.
딸은 분명히 그 반지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그 반지 아저씨를 만났다고 얘기한다면 아마도 딸은 ‘왜 안 사왔냐’고 아빠를 타박할 것이 뻔하다.
그럼에도 나는 아이에게, 그 반가운 아저씨를 만난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 여전히 반지를 팔고 계신 그 아저씨 아직 건강하시더라고…

 

언제 또 전철에서 그 분을 만날는지 알 수 없지만 다음 번에 다시 만난다면, 다른 데서는 구할 수 없는 그 반지를 여러 개 사서 좋은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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