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겨온 글

MB정부가 ‘괴담사냥’에 실패한 이유는?

아르쎄 2011. 11. 30. 14:58

MB정부가 ‘괴담사냥’에 실패한 이유는?
시사INLive|
변진경 기자|
입력 2011.11.30 09:55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메시지가 인터넷과 휴대전화로 퍼졌다. 검찰은 신뢰저해사범 전담수사팀을 꾸려 최초 유포자를 찾겠다고 나섰다. 광우병 특집을 방송한 MBC < pd수첩 > 제작진도 허위 사실 유포 따위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기 시작했다. 2009년 1월에는 인터넷 경제 논객 미네르바가 체포됐다. 허위 사실을 유포해 경제위기를 부추겼다는 혐의였다. 그해 10월, 경찰은 "신종플루 백신은 위험하니 접종을 거부하자"라는 이야기를 퍼뜨린 고등학생 2명도 검거했다. 지난해 3월 발생한 천안함 사건 이후에는 좌초설을 주장한 신상철 민군합조단 민간위원 등을 검찰이 기소했다. 올해 3월에는 일본에서 방사능 물질이 건너온다는 메시지를 유포했다는 혐의로 20대 광고 디자이너가 검거됐고, 7월 서울에 기록적인 폭우가 발생했을 때에는 경찰이 '서울시 수해방지예산 10분의 1 감소설'과 같은 이야기를 퍼뜨린 이를 색출하겠다고 나섰다. 최근에는 검찰이 한·미 FTA의 부작용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사람을 형사처벌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광우병, 미네르바, 신종플루, 천안함, 방사능, 폭우, 한·미 FTA…. 이 모든 사건 뒤에는 '괴담'이라는 단어가 따라붙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정부와 보수 언론은 나라가 혼란스러워질 때마다 그 원인을 '괴담' 혹은 '유언비어'에서 찾았다. 정부 관계자와 언론이 괴담 정국에 대한 우려를 표하면 검찰·경찰이 나서서 유포자를 색출하고 사법처리하는 식이다. '유언비어 유포죄'의 처벌 조항 근거는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1항. 1961년 제정돼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받을 때까지 10건이 이 법으로 기소됐는데, 모두 2008년 이명박 정부 이후 적용된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우리나라에서 공권력으로 유언비어를 단속한 최초의 정권은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는 국방보안법, 조선임시보안령, 육·해군 형법 등을 통해 '불온언동죄' 혹은 '조언비어죄'를 다스렸다. "일본이 전쟁으로 약해지는 날이야말로 우리 조선 민족이 일고(一考)를 요하는 기회다"라는 소문과 같은, 일본 패망·조선 독립과 관련된 유언비어들이 주요 처벌 대상이 되었다( < 유언비어를 통해 본 일제말 조선민중의 위기담론 > 변은진, 2011년. 참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3년 2월에는 경범죄처벌법을 개정해 '공공의 안녕 질서를 저해하거나 사회불안을 조성할 우려가 있는 사실을 왜곡 날조하여 유포한 자'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이 조항은 민주화 이후 구성된 1988년 국회에서 삭제됐다).

"SNS는 오히려 자정작용 활발한 곳"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정부가 유언비어 단속에 가장 심혈을 기울인 시기는 광주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 때다. 1980년 5월17일 계엄군은 '유언비어'는 물론 '유언비어가 아닐지라도 1)전·현직 국가원수를 모독, 비방하는 행위 2)북괴와 동일 주장 및 용어를 사용, 선동하는 행위 3)공공집회에서 목적 이외의 선동적 발언 및 질서를 문란시키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계엄포고령 10호를 내렸다. 그해 6월 서울시경은 유언비어 승객을 신고하는 택시·버스 운전사에게 모범운전사 자격 기준을 완화해주는 식의 포상 제도를 마련하기도 했다.

당시 정부에 따르면 5·18 민주화운동을 키운 주범은 시민 사이에 나돌던 허무맹랑한 유언비어였다. 1980년 5월21일 계엄사령부는 '광주 지역 소요가 극심해진 원인'으로 다음과 같은 '허위 악성 유언비어'의 사례를 발표했다. '△공수부대가 몽둥이로 무차별 구타해 시민들의 눈알이 빠지고 머리가 깨졌다 △계엄군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아무나 죽일 수 있는 살인 면허를 지녔다 △군인들이 만삭 임신부를 죽였다.' (훗날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 인정한 광주민주화운동 사망자 240명 가운데에는 집 앞 골목에서 남편을 기다리다 머리에 총상을 입고 사망한 임신 8개월 최미애씨(당시 23세), 기독병원에서 헌혈하고 나오다 총격을 받은 박금희양(17), 친구들과 마을 언덕에서 놀다가 6~7발의 총상을 입고 즉사한 전재수군(11) 등이 포함돼 있다.)

당시 언론의 시각도 마찬가지였다. 1980년 5월31일자 < 조선일보 > 3면에 실린 좌담 기사 '광주에서 본 광주사변'을 보자. 당시 광주 현지를 취재했다는 사회부 기자 8명이 참석한 이 좌담 기사의 부제목은 '유언비어 판친 1주'. 좌담 참석자들은 광주 시민들이 학생 데모에 개입하기 시작한 이유를 '지역감정과 관련된 악성 루머가 퍼졌기 때문'이라거나 택시·버스 시위대의 출현을 '데모 학생들을 태운 택시 운전수가 칼에 찔려 죽었다는 유언비어 탓'이라고 설명했다.

30년이 지난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다. '광주사태'가 '한·미 FTA' 등으로, '유언비어'가 '괴담'으로 주제와 용어가 바뀌었을 뿐 정부와 보수 언론은 여전히 사회혼란을 일으키는 세력으로 '거짓을 선동하는 자와 현혹되는 자'를 지목했다. 다만 추가된 것이 있다면 괴담이 유통되는 '공간'에 새로이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최근 보수 신문들이 괴담 정국 연속 기획기사를 통해 '점찍은' 공간은 트위터와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검찰도 'SNS 이용 괴담 유포자'에 대한 구속 수사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심재웅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유언비어는 속성상 그 유언비어가 겨냥하는 집단에 대한 신뢰가 낮을수록 더 빠른 속도로 퍼지는 경향이 있다. SNS가 아닌 어떤 매체를 통해서든 마찬가지다. 그런데 정부나 기성 언론 처지에서 감당하기 부담스러운 SNS가 워낙 대세이다 보니 이를 가로막는 차원에서 괴담이라는 관점으로 SNS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심 교수는 또 "오히려 SNS는 기존 언론과 달리, 쌍방향 이용자 사이에 합의를 통해 빠르게 정보를 교정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작동한다"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유언비어에 대한 자정작용도 활발히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찍이 유언비어의 원인과 양상을 분석한 미국 심리학자 고든 올프트와 레오 포스트먼은 1945년 논문을 통해 공식 하나를 내놓았다. '유언비어의 양(Rumor)=그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 개인들에 미치는 주제의 중요성(Importance)×해당 이슈에 관련된 증거의 모호성(Am- biguity)'이라는 것이다. 훗날 학자들은 '증거의 모호성'에 유언비어가 향한 조직의 '신뢰성'이 크게 작용한다는 연구 결과를 여럿 내놓았다. 아무리 막아도 대한민국에서 '괴담'이라 불리는 이야기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