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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 애국가 보다 님을 위한 행진곡이 애국가가 되어야한다고 본다

아르쎄 2014. 2. 18. 13:44

애국가 보다 님을 위한 행진곡이 애국가가 되어야한다고 본다

 

 

옆사진 만주국 창립기념일에 안익태의 연주모습. 이 연주는 만주국 창립기념 무대에서 직접 연주 지휘되었다.

 

 

일제가 세운 괴뢰국 만주국을 찬양하는 노래 만주가를 만들었으며 이 노래는 후일 해방이후 가사만 살짝 바꿔 코리아환상곡이 되었다.

 

우리가 잘아는 가곡 선구자는 또 어떤가?

 

락토만주가

 

오색기 너울너울 락토만주 꿈꾼다.

백방의 전사들이 너도 나도 모였네

우리는 이 나라의 복을 받은 백성들

희망이 넘치누나 넓은 땅에 살으리 (중략) ...

끝 없는 지평선에 오곡금파 금실렁

노래가 들리 누나 아리랑도 흥겨워

우리는 이 나라에 터를 닦는 선구자

한 천년 세월 후에 천야만야 빛나리

 

일제의 괴뢰국가 만주국을 찬양하는 락토만주가의 가사를 바꿔 우리가 잘아는 가곡 선구자가 탄생되었다.  

 

이 ‘선구자’라는 말이 독립투사를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었단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로 윤해영이 만주괴뢰국을 찬양한 ‘락토만주’란 시에는 ’선구자’란 말이 등장하고 당시 선구자가 어떤 의미로 쓰여 지던 단어였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 낙토만주에서 ‘선구자’란 말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선구자란 독립운동을 하는 선구자가 아니라 만주국의 건국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선구자라 지칭한 것이며 당시 만주에서는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선구자가 아닌 ‘산사람’이라고 불렀다.

 

또한 여기서 말하는 오족이란 일본. 조선. 만주. 몽골. 한족을 지칭하는 것으로 윤해영이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하는 일제의 나팔수였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가곡‘선구자’를 부르며 콧등이 시큰해야 할 이유가 없었으며 광야에서 말달리던 선구자를 동경해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었던 것이다.


일찍이 문익환 목사님은 조두남의 선구자가 이러한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평생 ‘선구자’를 부르지 않으셨다고 한다. 이제 우리도 ‘일송정 푸른 솔에..말달리는 선구자...’로 우리의 가슴을 비장하게까지 했던 이 노래가 지난 60년간 이 나라의 백성들을 속여 온 조두남에 의해 날조된 거짓 노래임을 인식하고 다시는 이 노래를 부르지 말아야 하겠다.

 

안익태의 음악들과 그 과거들을 공부하게 되면 이러한 친일행위에 부역하는 노래들이 참 많다...

 

대학시절 대중음악과 사회학적 측면의 고민에서 수 많은 장르와 세상의 음악들에 대해 공부하며 시작한 다운타운 DJ생활 그리고 최근 인터넷 방송국 DJ생활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음악들과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공부해왔던가? 그리고 안익태의 음악과 삶에 대한 부분역시 내 작은 음악적 학습의 한 관례였다.

 

최근 통진당 내부의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 사태와 이석기 의원의 애국가 부정의 말을 바라보며 말들이 많다. 또한 오전에 출근하기전 이곳 군무방에 애국가 강요는 파쇼의 잔제라며 애국가 강요를 거부한다는 요지의 글들을 올렸다... 반응들은 반반이다.

http://bbs2.agora.media.daum.net/gaia/do/kin/read?articleId=65247&bbsId=K162&searchKey=subjectNcontent&sortKey=depth&searchValue=%EC%95%A0%EA%B5%AD%EA%B0%80&pageIndex=1

 

그러나... 반대의 입장의 사람들에게 묻자.... 나는 애국가를 부르지 말자라는 것이 아니다. 안익태의 애국가가 과연 그만한 자격과 역사적 긍지가 있는 곡인가 하는 의문점을 던져보고 싶다는 것이다.

 

물론 안익태가 샌프란시스코 교회에서 망국의 교민들이 스코틀랜드 민요 오울드 랭 사인의 선율에 맞춰 애국가를 부르는 것을 보고 뜨거운 민족애로 지금의 애국가 선율을 지을 때만 하더라도 열렬한 민족주의자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많은 식민지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1937년 중일전쟁 이후에 보여주었듯이 '대일본제국'의 대세를 수긍하고 적극적인 친일의 대오에 안익태 역시 가담했고 그 이후 그는 창작하며 무대에 서고자 하는 욕망으로 친일한 역사가 있듯이 과연 그의 애국가가 우리의 애국가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느냐 묻고 싶은 것이다.

 

나는 분명하게 말한다.

 

폭압과 압정의 시대에 목숨걸며 민주화투쟁하며 내놓은 님을 위한 행진곡이야 말로 이 시대의 우리의 애국가라고 말이다. 프랑스혁명을 노래한 혁명가이자 프랑스 국가인 La Marseillaise가 그러하듯 이 나라의 정체성 민주주의 국가의 이상을 노래한 곡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친일 분자의 노래를 애국의 이름으로 강요하는 현실 또한 난 받아들일 수 없는 내 양심과 역사인식의 문제이다.

 

무엇보다도 안익태의 애국가는 일본을 찬양하는 의미의 노래라는 숨은 정서가 깔린 곡이기 때문이다.

 

친일파가 만들었지만 해방이후 그래도 우리와 함께 기쁘고 슬플때 함께한 정서를 버릴 수 없지 않느냐라고 한다면 난 이말에 대해 더더욱 세차게 부정하고 싶다. 그러한 정서, 방관 방치의 생각이 역사인식과 민족주의적 견해에서 과거사를 재대로 청산하지 못한 스스로의 변명이라고 말이다. 

 

이승만 이후 다시 집권한 친일파 그리고 그들이 미군정과 이승만의 비호아래 반쪽짜리 해방과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유지해온 우리네 못난 시민의식이라고 말이다. 

 

한국환상곡중 25분중 16분 정도 지나고 나면, 우리가 부르는 애국가가 나오고, 바로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채보한 악보다(앙코르4.5)

1942년 연주된 안익태가 만든 일본제국주의를 찬양하는 만주국창립 기념곡의 음정이 너무나 같다. 가사만 바꾼셈이다.  만주환상곡의 일부분을 한국환상곡에 그대로 삽입했다. 그리고 훗날 이곡을 수정하여 우리의 애국가가 되었다 문사는 설사 작곡년도가 뒤바껴도 그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래부터는 펌

 

친일파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는 겉으로는 애국을 노래하는 것 같지만 싫은 일본에 대한 찬양이 의미 깊게 숨어져 있습니다.

 

 

1.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2. 남산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기상 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3. 가을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없이

밝은달은 우리가슴 일편단심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4. 이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며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사랑하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자 여기서 우리 전통 부분인 1절과 후렴구를 제외하고 살펴 보겠다.

 

 남산위의-> 남산은 대한민국 서울이 남산을 의미 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교토를 기준으로 남쪽에 있는 고야산  혹은 일본 전체를 기준에서 중심에서 남방부에 위치한 후지산을 상징하는 것으로 조선시대와 대한제국 시기에 지금의 남산은 목멱산이란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저 소나무 -> 소나무는 말 그대로 일본 전통 나무의 상징입니다. 일본에선 일왕이나 귀족의 저택을 중심으로 소나무를 심는 문화가 발달하였으며 일찌감치 소나무에 등급을 매겨 상품화 했을 정도로 소나무를 귀한 나무로 여겨왔다.

 

 

일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소나무와 함께한 풍경

  

 

 또한 한국의 남산 즉 목면산은 소나무가 상징인 산이 아니며 일본의 후지산과 고야산이야말로 소나무 명승지로 일본에서 이름 높은 곳이죠

 

 철갑을 두른듯 -> 이는 일본의 전통 무사인 사무라이의 복장을 상징하고 있다. 한국의 전통 갑옷이 종이와 가죽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과는 달리 일본의 갑옷은 전신 철갑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한눈에 봐도 소나무가 철갑을 둘렀다는 것은 일본 사무라이를 상징하는 말이지 결코 한국 전통의 무사의 기개 높은 모습이 아니다.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 말 그대로 일본 민족 고유성을 찬양하고 있는 가사 내용이다. 일본에서 태풍은 신풍이라 하여 나라를 보호해주는 수호신 같은 존재로 여겨 지고 있으며 해마다 바람의 신을 축원하는 축제를 여는 도시만에도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고려 몽고의 원정군을 태풍이 물러가게 한 것에서 시작해서 신풍에 대한 찬양은 2차대전 말기 자살 특공대를 신풍(가미카제)특공대로 명명하여 출격시킨 것까지 이어진다.

 

 우리의 전통 문화는 매화와 대나무를 기상과 고고함의 상징으로 사용하였으며 바람과 서리는 오히려 시련이라 생각하였는데 애국가의 가사는 이와 같인 조선과 대한제국의 문화적 전통보다는 일본의 문화에 가까운 가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3절만 해도 다소 노골적으로 일본을 찬양하고 있는 가사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가을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없이 -> 이는 일본의 욱일 승천기를 의미하는 것과 동시에 일본 건국 신화에 나오는 태양의 여신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 욱일승천기

 

밝은달은 우리가슴 -> 이 역시 일본 건국 신화의 달의 여신인 츠쿠요미 노미코토라를 상징하는 것이다.

 

일편단심일세 -> 이는 태양과 달의 여신 그리고 바다의 남신인 스사노오 노미코토가 하나되어 일본을 지켜주고 있으며 일본의 초대 천왕인 진무천왕을 보호한다는 내용이다

 

 4절의 가사는 말그대로 일본 기미가요나 군가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따라한 수준의 노래일 뿐이다. 루스 배네딕트의 국화와 칼이란 저서를 보면 일본인의 전쟁과 국가에 대한 태도를 잘 살펴 볼 수 있는데 일본의 군가나 군홍보물은 서양의 군가가 매우 활기차고 긍정적인 것과 대비되어 매우 어둡고 부정적이며 그러한 고난을 그대로 감수하는 것이 사무라이 정신이라는 일본인적 사고관을 대변하고 있다는 설명을 찾아 볼 수 있다.

 

한국의 전통 가요가 승화와 해학에 기품을 두고 있는 것과 달리 일본의 전통가요는 지금의 일본 국가가 그러하듯 처절하고 고난적인 모습을 그대로 들어내어 그게 삶이며 고난하며 가는 것이라는 점을 강요하는 비극의 일상화가 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애국가의 4절도 바로 그러한 일본식 군가와 매우 흡사하다.

 

 일본인은 괴로우나 즐거우나 지만 한국인은 괴로운 것도 즐거운 것이고 우리를 위한 일이 즐거운 문화입니다. 이는 미묘한 차이 같지만 우리 민족의 정통적 정서보다는 일본 민족의 전통적 정서와 맥락을 더 같이 하는 형태의 가사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의 개화가사가 고난을 강요하는 것과 반대로 한국의 개화가사는 개화를 매우 밝고 긍정적으로 묘사하며 좋은일을 함께 하자라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은 한국 개화 가사를 조금만 검색해 보셔도 느낄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애국가는 변절자 친일파의 매국적 가사관이 그대로 담겨져 있는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