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설악산 산행기
아르쎄
2010. 8. 13. 10:35
백담계곡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용대리 주차장에는 저녁 6시가 다되어 도착했다. 배낭에 침낭, 옷가지, 며칠을 날 식량 등을 챙겨넣고서는 막 떠나려는 버스를 잡아 세웠다. 솔찬이는 잠자리채를 들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를 타기전 솔찬이 녀석이 새끼 무당개구리를 잡았는데, 냄새가 어찌나 역겹던지 결국 차창 밖으로 개구리를 던졌다. 개구리를 버린 후에도 냄새는 가시질 않았고 백담사에 도착한 뒤에도 솔찬이는 콧속이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 ||
백담사 주차장에 내린 뒤, 계곡에서 아들의 손과 콧속을 씻고 잠깐 휴식을 취한 뒤 수렴계곡을 거슬러 올라갔다. 걸어가는 사이 어둠이 깔렸다. 우리는 준비해간 헤드렌턴을 머리에 쓰고 길을 걸었다. 녀석은 무섭다고 하면서도 전혀 무서운 기색이 없이 오히려 렌턴의 불빛에 비치는 온갖 것들을 유심히 관찰 하곤 했다. | ||
오랜만에 하는 어둠 속의 산행이어서 혼자였다면 무서움에 뒤를 돌아보곤 했을 것이었지만 전혀 그러지 않았다. 어린 녀석이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큰 위안이 된다는 사실에 놀랐고, 동행자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 ||
수렴산장에 도착하니 밤8시반 정도가 되었다. 9시에 소등이 되고 나서야 우리는 라면에 밥을 말은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수렴산장은 이미 자리잡은 등산객들로 인해 우리가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취사장 맨바닥의 비교적 고른 부위를 찾아 깔개를 깔고 침낭을 펴서 누웠다. | ||
다음날, 봉정암까지 가는 길은 수렴동에서 같이 밤을 보냈던 단체 산행객인 중,고생들(천주교 모임) 덕분에 아주 수월했다. | ||
형, 누나들의 칭찬에 우쭐해진 녀석은 경쟁심과 과시욕 때문에 그들에게 뒤쳐지려 하지 않았다. 상당히 고된 길이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형, 누나들을 앞질러 봉정암까지 단 숨에 올라갔다. | ||
봉정암에 올라가서 쉬고 있는데, 마침 점심공양임을 알리는 방송이 있었다. 덕분에 점심을 별도로 해먹어야 하는 수고를 덜게 되었다. 봉정암에서 소청대피소까지 가는 동안 녀석은 깔딱고개를 단 숨에 올라온 피로 때문인지, 아니면 점심공양을 하는 동안 경쟁자인 형, 누나들이 사라져서인지 멀지 않은 길인데도 가다 쉬다를 반복했다. 멀지 않은 곳에 중청대피소가 있지만 예약제로 운영되는 탓에 성수기인 요즘엔 가봤자 자리를 잡을 수 없다. 그래서 선착순으로 자리를 배정해 주는 소청대피소에서 미리 방을 배정받았다. 아직 시간이 오후 1시쯤 밖에 되지 않았기에 짐을 풀어 놓고 대청봉까지 갔다 오려고 했지만, 잠시 쉬려고 들렸던 방에서 순식간에 골아 떨이진 솔찬이 녀석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따뜻한 방(밖은 연무가 심하게 끼어 있고 바람이 서늘했다)에 들어오자, 나도 피곤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고 아들 옆에 누워 산에서의 달콤한 낮잠을 즐겼다. 잠시 후 우리 방에는 세명의 식구가 추가로 들어왔는데, 그들은 아버지와 두 아들이었다. 큰 애는 중학생쯤되었고 작은 애는 10살이라고 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순하고 말이 없었으며 선량해 보였다. 소청대피소에 도착해서부터 내내 이슬비가 내렸다. 가시거리가 30~50m 정도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산은 온통 안개에 덮혀 있었다. 대피소에 오래 머물던 사람의 얘기가 근래에는 이런 날씨만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그날 밤 잠시동안 하늘의 구름이 걷히고 별들이 나타났었다. 제일 먼저 나타난 것이 북두칠성이었는데, 구름으로 뒤덮힌 깜깜한 하늘에서 갑자가 밝은 별이 모습을 나타낸 것이었다. 하늘에서 빛나는 별들을 보고 모두들 탄성을 질렀다. 연무와 먹장구름으로 인해 기대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하늘과 가까운 곳에서 별들을 보게 된 것은 나 뿐만 아니라 그 곳에 있던 모두에게 남다른 감흥을 일으켰다. 조용히 노랫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 나왔고, 나도 별과 관련된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 상황에서는 누구도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 숙소 출입문에 기대에 짐을 챙겨 나서는 나를 흘려보는 이가 있다. 어젯밤에 이어 오늘 새벽에도 숙소앞 난간에 기대에 한참 얘기를 나눴던 여자다. 그녀는 해마다 이곳 설악산 소청대피소에서 한 두 달씩을 보낸다고 했다. 한번은 이곳에서 생활하다 서울로 내려 갔는데, 서울에서의 생활에 사흘을 버티지 못하고 병이 났다고 했다. 그녀는 이번에 여기 오기 전에 지리산을 종주했지만 자신은 설악산이 제일 좋다고 했다. 보기에 적어도 30대 후반은 되어 보이는 그녀는 산을 각별히 좋아하는 기호 탓에, 제 삶을 찾아간 친구들과도 멀어지고 자신의 취미와 정서를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 아직 결혼을 못했다고 했다. 아이들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쳇바퀴에 몸을 맡긴 채 자신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내 삶과 비교되어, 그녀가 부러웠다. | ||
아침이 되었다. 어제 밤 간간히 나타났다 사라졌던 별들로 인해 오늘은 날씨가 좋지 않을까 기대했었지만, 여전히 소청대피소는 짙은 안개에 갇혀 있었다. | ||
숙소 앞에서는 두 분의 사진사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산 아래쪽을 향해 카메라를 스탠드에 고정시켜 놓고는 언제 부턴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벌써 여러 날 째 연무가 걷히기만을 바라며 이러고 있었다고 했다. 아래쪽에서 어렴풋이 바위산의 실루엣이 나타났지만 이내 곧 사라졌다. | ||
여전히 구름이 산허리를 감싸돌고 연무가 시계를 가리고 있었지만, 오를수록 서서히 날이 개고 아래쪽에서 설악산의 기암괴석이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아래쪽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잠자리들이 올라갈수록 많아졌다. 솔찬이의 잠자리채가 활동을 시작했다. | ||
산이 좋은 걸 알지만 산을 내려오면 그 느낌을 잊는 것 같다. 비경을 이미 알고 가지만 가서는 다시 또 감탄하게 된다. 이번 산행도 마찬가지다. 처음 가는 산길은 아니지만 같은 길을 가더라도 항상 새롭다. 그것은 크게 기대했던 영화를 보고 실망하는 것과는 완전히 반대로 현실은 기대 이상이다. 아마도 그것은 자연이 만들어 낸 것과 인간이 만드는 것이 가진 근원적 차이가 아닐까 한다. 소청에 이르자 막혔던 시계가 확 트였고 중청으로 오르는 길에서부터는 설악산의 장관을 감상하며 산행을 즐길 수 있었다. | ||
중청대피소에서 대청봉을 바라보니, 구름이 순식간에 대청봉을 덮었다 걷었다를 반복했다. 다시 돌아와야 할 중청대피소에 베낭을 풀어놓고 대청으로 올랐다. | ||
높은 산에서만 자란다는 눈잣나무가 대청봉오르는 양옆으로 넓게 펼쳐져 있다. 눈 위에서 자라서 눈잣나무가 아니라 누운 잣나무의 준말로 눈잣나무라한다. 산마루에서 부는 모진 비바람을 견디느라 높이는 1m 도 안되도록 낮게 깔리고, 넓게 자란 가지는 강한 바람을 견디기 위해 땅에다 보조뿌리를 내려 지탱하기도 하여 나무의 폭이 지름 15m가 넘는 것도 있다고 한다. 열매인 잣은 아직도 이곳 설악산 어딘가에 살고 있을 거라는 반달곰이 아주 좋아하는 간식이었다고 한다. 높은 이곳에서 주저앉아 산 아래를 굽어보면서 잣을 씹는 곰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하지만 이제 그 놈들은 인간의 눈을 피해 더 깊은 산 골짜기로 숨어들어가 그 달콤한 열매의 맛을 잊었을 테고, 눈잣나무는 산을 오르는 인간과 유독 강아지처럼 인간을 따르는 이 산의 다람쥐들이나 향유하는 명물이 되었다. | ||
마침내 우리는 대청봉에 올랐다. 정상에서는 구름이 가려 좀처럼 산아래가 보이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한글로 대청봉이라고 적힌 돌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우리도 정상을 차지했다는 증거를 남기고는 봉우리를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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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용대리에 세워뒀으므로 다시 백담사 쪽으로 내려가야 했다. 하지만 올라왔던 길을 되짚어 가기보다는 다른 길로 내려가는 것이, 될 수 있는 한 산의 많은 부분을 볼 수 있기에 오세암을 경유해서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오세암으로 가는 길은, 소청봉에서 봉정사로 내려가는 길과, 희운각으로 내려가 공룡능선을 타는두 갈래의 길이 있다. 희운각 쪽은 일반적으로 설악동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주로 가는 길이고 희운각에서 마등령에 이르는 공룡능선은 5km에 해당하는 험한 산길로 (성인기준으로 5시간 소요) 매니아가 아니면 일반 등산객들이 그리 많이 찾지는 않는다. 소청에서의 시각은 오후 1시, 에라 모르겠다. 공룡을 타보자. 솔찬이도 아빠가 결정하는 쪽을 따르겠다고 했다. 소청에서 희운각대피소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른 내리막으로 무릎을 힘들게 했다. 희운각 산장에서 아침에 먹다남은 밥을 점심으로 먹었다. 대피소에서 외국인 산행객을 만났다. 솔찬이의 잠자리채를 보고 매미와 잠자리를 한국말로 어떻게 부르는지 물어서 설명해 주었다. 그들은 잠자리를 드레곤플라이 즉, 용파리라고 불렀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잠자리와 파리가 비슷한거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
솔찬이에게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공룡능선을 올랐다. 첫 봉우리를 오르는 길부터 예사롭지 않았는데, 내려오는 등산객이 다시 돌아가라고 거의 협박하다시피 했다. 일곱살 아이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말에 솔찬이도 겁을 먹는 듯 했다. 하지만 돌아가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 ||
설악산의 능선길을 지리산 종주코스 정도의 난이도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설악산의 능선길은 말이 능선길이지 온전히 십 수개의 산을 오르고 내리길 반복하는 코스다. 힘든 만큼 또한 설악산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마침 날씨도 괜찮았다. 그리고 산 아래로부터 솟아오르는 구름이 능선을 넘어가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어서 신선이 된 느낌마저 가질 수 있었다. | ||
솔찬이가 탈진할 것을 대비하여 희운각대피소에서 구한 비스킷과 스니커스가 바닥나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오르내림이 계속되었다. 오는 동안 만났던 서너 팀의 등산객외에 공룡능선길의 중반 이후에는 아예 사람을 만날 수 없었다. | ||
해가 서쪽으로 진 뒤에야 공룡능선의 끝인 그 빌어먹을 마등령이 눈앞에 보였다. 마등령을 보면 왜 이 고개가 마등령인지 담박에 알 수 있다. 말 그대로 그 능선이 마치 말등을 연상하게 한다. 시계가 없어 시간은 알 수 없었지만 아마 저녁 7시 반쯤 된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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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지칠대로 지쳤고 에너지가 부족하였지만, 베낭에는 먹을 게 별로 없었다. 버너의 점화 장치가 고장나고 먹을 물도 부족하여 음식을 해먹을 상황이 못되었다. 베낭을 여니, 라면1개와, 햄1개가 있었다. 그거라도 먹자는 솔찬이의 요구에 햄을 먼저 썰었다. 시장이 반찬인지라 먹을 만 했다. 아니 맛있었다. 그리고 라면도 부셔서 먹었다. 솔찬이는 옆에서 생라면 먹을 때 적절한 수프의 비율을 코치했다. 지친 몸을 잠시 쉬고, 마등령 왼쪽으로 오세암을 향해 내려갔다. 어둠은 곧 짙게 깔리고 산을 처음 들어설 때 처럼 헤드랜턴을 머리에 썼다. 어둠속에서 멀리서 ‘부스스’하는 큰 짐승의 움직임이 감지되더니, 멀지 않은 곳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나기도 했다. 요즘 멧돼지가 사람을 공격하기도 한다는 얘기가 머리를 스치자 망 부분이 부러져나간 솔찬이의 잠자리채를 단단히 잡았다. 그리고 짐승을 쫓고자 목소리를 높였다. 거리상 벌써 나왔어야 할 오세암은 쉬이 나타나지 않았다. 솔찬이는 지칠대로 지쳤고, 내가 말하는 절의 존재에 대해서 의심하는 말을 하며 울먹이기까지 했다. 어쩌면 아빠가 자기를 안심시키기 위해 없는 절이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한 듯 하다. 그런 솔찬이를 안아주고 격려의 말을 해 주었지만 솔찬이는 여전히 무서워하였다. 한 참을 걸어가다, 드디어 멀리서 인공적인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정말로 반가운 불빛 이었다. 절 마당으로 가니 그 곳에서 기거하시는 듯한 분들이 나와서 얘기를 나누다 우리의 모습을 보고 반가이 맞아 주셨다. 아이를 데리고 이 힘든 산행을 한 아빠에 대한 타박도 했다. 친절히 챙겨주시는 저녁을 먹고 절에서 마련한 숙소에 들었다. 욕실의 물은 산에서 내려오는 샘물이었는데, 그 찬 물로 솔찬이와 나는 대충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오세암은 고려시대 오세(5살)동자가 이곳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절 이름이 유래했다 한다. 오세암은 김시습이 출가한 곳이며, 만해 한용운이 님의 침묵을 저술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 관음암으로 불리던 이곳을 조선 인조시대에 와서 오세암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그것은 오세동자와 관련한 유래가 있다 한다. 고려시대 설정이라는 스님이, 꿈에서 관세음 보살님이 알려준 대로 자신의 고향으로 갔다가 전염병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조카뻘되는 오세동자를 데려와 키우게 되었다. 겨울이 되어 식량을 구하려 양양으로 가게 된 설정스님은 작은 암자에 혼자 남게 된 오세동자를 걱정하여 관세음보살을 뇌며 있으라고 했는데, 양양으로 갔던 설정스님은 갑자기 내린 눈에 발이 묶이고 병마저 얻게 되어 한참 후에야 기력을 회복하여 암자에 돌아갈 수 있었는데, 가서보니 걱정했던 오세동자는 관세음보살의 보살핌으로 여전히 건강하게 관세음 보살님을 외고 있더라 하는 얘기가 전해진다. | ||
다음날 아침 오세암을 나와서 영시암을 거쳐 다시 백담사로 나왔다. 오는 길에 솔찬이는 쉬는 때마다 계곡에서 팔을 걷어 붙이고 가제와 도마뱀 따위를 잡았다. 오세암에서 영시암으로 나오는 숲길은 아름드리 나무들과 계곡으로 이뤄져 숲의 맑은 공기를 만끽할 수 있어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