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귀국길 환승 20시간 동안에 머문 이스탄불

아르쎄 2021. 2. 23. 21:02

첸나이 공항을 이륙하자마자 앞으로의 여정을 위해서 잠을 청했다. 
앞으로 이틀동안은 편안히 누워 잠잘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아부다비 시내, 
눈이 내렸는지 아니면 모래가 가로등에 그렇게 비쳤는지 길가로 허연가루가 흩뿌려진 듯 보였다.

아부다비 공항에서는 간단히 검색을 거치고는 곧바로 환승 대합실로 갔다 
물론 중간에 게이트가 바뀌긴 했지만 전혀 문제없이 TK항공을 이용할 수 있었다. 

새벽 두시경 비행기를 환승하여 아부다비를 이류해서 이스탄불로 향했다. 
이스탄불 상공 위에서 바라보니 눈이 쌓여있었다. 
터키도 눈이 내리는 기후였던가. 내가 아직 터키에 대해 모르는게 많다는 걸 깨달았다.  

6시가 넘어 비행기에서 내렸다.
여명이 비칠 시간이 되었을거라 생각했지만 여전히 바깥은 어두웠다.

입국장을 나오며 환전을 했다. 
글로벌 익스체인지란 곳에서 했는데, 영수증을 써주며 점원이 말하길
'15일 이내에 환전을 하면 동일 환율로 바꾸어 주겠다'는 것이다. 

입국장을 나와서 심카드를 구입했다. 25giga에 240리라였다. 
겨우 오늘 하루를 위한 거에 비해면 비싼감이 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른 시간이라 밖으로 나가기도 뭐하고 해서 공항을 어슬렁 거렸다. 
출국장 위로 올라갔는데 매우 한산했다. 짐을 줄이기 위해서 지나는 사람에게 락커룸을 위치를 물었다. 

아래층 입국장에 있다고 알려줬다.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 짐을 맡겼다. 
짐을 맡기는 곳은 아래층 맨 좌측에 자리하고 있었고 가격은 하루에 40리라 (우리돈으로 5000원 정도될려나?...)인데
짐을 찾아갈 때 지불하면 된다고 했다.
 
락커룸 직원이 알려줘서 다시 한 층 더 아래로 내려가 밖으로 나가서 T12번 버스를 탔다.  
요금은 30리라이며 표는 근처 창구에서 사야했다. 

구글맵에서는 대중교통으로 2시간 넘게 걸리는 걸로 나왔지만 
그건 구글맵이 이 버스를 검색 못해서이기 때문인 듯하다.
실제 시간은 3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은 듯 하다. 

 

T2번 버스를 타고 내린 곳 (베야지드 광장 및 모스크)
시내를 달리는 트램

 


그랜드 바자르와 가까운 큰 광장과 모스크가 있는 곳에서 내렸다. 
아직 시간이 일러 그랜드 바자르와 그 주변 길거리를 거닐었다. 
그러다 백종원이 출연했다는 카이막 식당도 찾아가보았다.
구글맵을 통해서 찾아갔는데, 정확히 어딘지 특정할 수 없었다. 
대부분은 아직 문을 열지 않은 탓일 것이다. 

문이 열린 식당으로 들어가서 그림만 보고 음식을 골랐다 
일단은 너무 추워서 몸을 녹일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케밥종류인 듯한데, 짜파티 같은 빵과 같이 나왔다.

식사를 하고 아야 소피아 성당 쪽으로 같다. 
가는 길에 지도에 나와있는 수많은 모스크 중 한곳에 들러보았다.

곳곳에 과거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이스탄불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오빌리스크가 있는 광장으로 들어서자 경찰들이 가방을 수색했다. 
과거에 있었던 테러 여파로 아직도 경계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테오도시우스의 오벨리스크
하가야 소피아 모스크


공사중인 거대한 술탄아흐메드 모스크 따라 걷는데
한국말로 인사하는 현지인들이 보였다. 
아예 말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러는 편이 편했다. 

그러다 내가 안내판을 보고 있는데 한 젊은 친구가 찾아와서 말을 걸었다.
자기는 아트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 가게에 가서 차나 한잔 마시고 몸을 녹이고 가라고 했다. 

예술한다는데, 뭐가 있겠냐 하면서도 의심을 하며 따라나섰다. 
그도 그럴 것이 날씨가 제법 찼기 때문에 따뜻한 차 한잔 얻어 먹는거 손해 보는 일이 아니라 판단했던 것이다. 

차를 마시러 들어간 양탄자 가게


가게는 지하에 깔끔하게 차려져 있었다. 
예술이라는 게,.. 양탄자였다. 
데려온 친구는 곧 일어나고 다른 사람이 
사과차를 내어오고는 나한테 이래 저래 말을 걸더니
아니나 다를까 양탄자를 내앞에 펼쳐놓는다. 

난 여행다닐때 짐되니까 아예 뭘 사지 않는다고 정중히 딱 잘라 말했다. 
결국 포기한듯. 
차를 여유롭게 마시고는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일어섰다. 

아야소피아 성당, 아니 하기야 모스크로 들어가는 광장 입구에서 다시한번 가방을 검색당했다. 

아야소피아 성당,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건립하여 동로마 비잔틴 성당으로 쓰이다가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이지역을 차지하고는 이슬람 모스크로 사용되었다. 
20기 초에 박물관으로 사용되다가 작년(2010년)부터 다시 모스크로 사용되고 있다. 

 


서양건축사를 배우면서 이 건물을 아야 소피아 성당으로 인지했고
이슬람에 의해서 모스크로 사용되어 온 것을, 마치 고귀한 성당이 악의 세력에 의해 오염된 듯이 인식해 왔고
그런 인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불현 듯 깨달았다. 

길을 오가는 사람들, 서양인 처럼 생겼으면서도 어쩐지 친숙하다. 
이런 사람들이 고귀한 성당을 오염시킨 무리로 인식하고
무슬림들을 사탄의 무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와 왠지 거리감 있는 존재들로 인식해 왔던 
이유없는 편견을 가지고 여기까지 왔던 것이다.

그것은 기독교의 이기적인 존재들에 대해서 항상 비판적 시각을 견지해 왔고
이슬람에 대해서도 종교로서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던 나 조차도
그런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은연중에 이 건축물을 아야소피아 성당이라고 자연스럽게 지칭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하기야 모스크이다. 물론 과거도 있고 미래도 있겠지만 현재는 현재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모스크가 된 것은 이미 5백년도 더 된 일이 아닌가?

기도 시간이라 모스크 내부가 아직 관광객들에게 개방되지 않은 관계로 나는 어디선가 두시간을 더 보내야 했다. 
현지인 몇이 나에게 보트 투어를 알선했다. 15달러에 태워준다는 것이다. 
배 시간을 물었다. 12시반 이란다. 지금 11시반이니 아직 1시간이 남아서 '이따 오겠노라'고 말하고는
하기야 모스크 맞은편 아래로 이어지는 시장으로 걸어갔다.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이 이어졌다. 아라스타 바자르 였다.
양탄자를 파는 곳도 있었고, 작고 아기자기한 기념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관광객들로 붐빌 장소이겠지만 팬더믹 여파 때문인지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길을 따라 해변 도로에 까지 내려왔다. 

마르마라 해에서 보스포루스 해협으로 이어지는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많은 역사가 이곳을 스쳐갔을지를 짐작하며 해변으로 난 도로의 둑을 따라 걸었다. 

해변을 바라보고 서 있는 고대 구조물 -침입자를 방지하기 위한 성벽인 듯.
아시아쪽 전경
보스포루스 해협, 보이는 다리가 보스포루스 대교

 

바다를 향해 서있는 성벽
보수포루스 해협, 왼쪽으로 금각만으로 이어짐
금각만 끝에서 보수포루스 해협을 바라본 모습


 
바람이 거세진 않았지만 열린 공간에서 맞는 바람이 매우 찼다. 
패딩에 달린 모자를 쓰고, 손을 패딩주머니에 찔러 넣었지만 드러난 손목이 시렸다. 

저 멀리 한 노인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노인은 나한테 장갑을 들이밀었다. 
한켤레에 30 리라인가 불렀다. 
내가 장갑을 만지작 거리자 니트 모자까지 내어보인다. 합해서 40리라 달라고 했다. 
난 40리라를 꺼내줬더니 50리라라고 정정한다. 
모자와 장갑을 내밀며 반환을 요구했더니 노인이 웃으면서 굿딜이라고 말한다. 

둑을 따라 걷는데 고양이들이 많이 보였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곳의 고양이는 모두 비만인 듯 살집이 장난이 아니다.

둑 위에 누워있는 살진 고양이 


그렇게 금각만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동안, 
손잡고 걷는 연인들을 보았다. 이 곳에서는 연인들끼리 다정히 걷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보기 좋은 모습이다. 
갈라타 다리 근처에 가니 사람들이 많다. 

길거리 노점에서 소금친 옥수수를 사서 먹었다. 옥수수 낱알이 야물지 않아 알알이 까먹을 수 없고
입으로 뜯어 먹어야 했다. 
맛은 그냥 우리의 여느 옥수수와 비슷했다. 

이곳에서도 보트 호객행위하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얼마냐고 물으니 10달러. 아마 아까 그 호객행위 하는 사람에게는 최소 5달러가 자신의 수수료 였나보다. 
역사적인 보스포루스 해협을 보는 것도 짧은 관광에서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 배에 올랐다. 
10여명 정도 탈 수 있는 작은 보트 였는데, 승선인원이 찰 때까지 동안 잠시 기다려야 했다.

배 지붕위 관광객 남매의 모습

 
내 옆에 금발의 아가씨가 앉았는데,
그녀는 전망이 좋은 배 지붕에 올라가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자고 제안해 왔다. 
금발 아가씨의 부탁인데 아니 들어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가니 바람이 매우 차가웠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그녀가 손을 뻗어 한바퀴 도는 장면을 찍어줬다. 
나를 찍어 주겠다고 했지만 사양했다. 
너무 추워서 곧 아래로 내려옸고 승무원이 따뜻한 차를 내어왔다. 
차를 마시며 그녀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녀는 러시아에서 온 '아나스타샤'라고 했다. 
러시아의 마지막 공주이름과 똑 같다고 아는 체를 했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보스포루스 해협'에 대한 얘기와 이 길을 통해서 흑해, 그리고 그녀의 국가인 
러시아에 까지 갈 수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유럽으로 통할 수 있는 바닷길이라 러시아가 왜 그토록 크림반도에 집착하는지도 
무겁지 않게 얘기했다.



보스포루스 해협 유럽지역을 육지에 근접해서 북상해 갔다. 
예쁜 공공시설과 대학들이 해변에 위치하고 있었다. 
건물마다 접안시설을 해놓은 것이 마치 베니스를 연상시켰다. 

보스포루스 대교까지 갔다가 배를 돌려 아시아쪽 해변으로 남하했다. 
아시아쪽은 유럽쪽과 다르게 도시가 그다지 깔끔해 보이지는 않았다. 
해변에 밀집도 높게 다닥다닥 붙은 아파트들이
서민 냄새나는 자연스런 도시임을 말해준다. 
 

아시아쪽 전경
마이덴 타워


그렇게 남하하다가 바다위에 외롭게 솟은 마이덴 타워를 지나 다시 금각만으로 돌아 들어왔다. 
 
아나스타샤는 사흘간의 휴가가 주어져 이곳에 왔다고 했다. 
여행길이 힘들어서 호텔로 가서 잠부터 자고 어두워진 후에 일정을 재개할 거라고 했다. 
저녁에 시간이 되면 같이 만나기로 하고는 서로 왓츠앱을 교환했다. 

배에서 내려, 길을 건너는 그녀를 배웅해 주고 나는 갈라타 다리로 갔다. 
갈라타 다리 진입부 아래에는 유료 화장실이 있는데, 1리라 동전을 넣으면 열리는 턴레일이 설치되어 있었다. 

화장실에서 나와 상판인 도로로 올라가지 않고 아래쪽으로 걸었다. 
그곳은 식당가 였다. 팬데믹만 아니면 엄청 번성하고 있을 거리였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다리의 절반이상을 걷다가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따라 도로로 올라갔다. 
많은 사람들이 다리 위에서 아래로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피라미 만한 작은 고기와 한 척 정도 될 만한 고기 등 크게 두어 종류 정도의 물고기가 잡히는 모양이다. 

갈라타 다리 위에서 낚시하는 사람들
갈라타 다리 북단
갈라타 다리 북쪽의 한 주차장
금각만 북쪽의 공구상가 입구


다리의 북쪽으로 갔다.  
이 곳에는 아마 관광객이 거의 오지 않는 지역인 듯 하다. 
좌측으로 가니 공기구 시장이 크게 펼쳐저 있었는데, 
한참을 걷다가 그릴에 고기를 구워파는 케밥집에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샌드위치와 음료를 합해 2리라를 받았다.  
약간 양 노릿내가 나는 듯도 했지만 그런 대로 먹을 만 했다.

다시 갈라타 다리를 건너왔다. 
하기야모스크로 가기로 정하고 천천히 걸어올라갔다.
저녁에 식사할 곳을 탐색할 겸 주변 가게를 살피며 천천히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맞은편에서 한 여자가 걷다가 멈춰 나를 쳐다본다. 
아나스타샤였다. 
그녀는 친구와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산 뒤, 예약한 호텔을 찾고 있는 중이었는데 
어딘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녀가 말한 호텔이름을 구글맵에서 검색하니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있어 함께 걸어갔다.
한참을 걸어 호텔 이름이 붙은 건물을 찾았는데, 그녀는 이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검색하니 같은 이름의 호텔이 다른 지역에 떴다. 
대중교통을 검색하여, 그녀를 트램에 태워 보냈다. 


혼자서 하기야모스크에 왔다. 경찰관에게 오전에 왔었다고 했더니 예쁘게 생긴 여경이 가방을 검색하지 않고 
웃으며 그냥 통과시켜 주었다.
드디어 하기아모스크 내부로 들어왔다. 
밖에서 봤을 땐 외부 구조가 복잡하게 되어 있어 내부도 여러개의 방으로 나누어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모스크 내부는 거대한 하나의 큰 홀로 이루어져 있었다. 
각각의 돔은 서로 연결되어 큰 홀 공간을 이루는 구조체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리스식 기둥으로 실이 구획되고 이층으로 난 계단도 있었지만 큰 홀 주변에 딸린 부속시설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실내에는 일정한 높이로 샹들리에가 달려 있어서 조명역할을 하고 있었고,
높은 돔천장과 벽면에 모자이크 타일로 그려진 패턴과 성화가 인상적이었다.
거의 천오백년전에 이와 같은 건물을 지었다는 게, 그리고 그 건물이 현재까지 이렇게 원형을 거의 간직한채
남아있다는 것이 대단할 따름이다. 

우리나라도 고려시대의 몽골의 침략, 조선시대의 임진왜란을 겪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일었다. 

모스크 한쪽에 벽에 기대어 한참 동안 앉아 있다가
추위에 함께 찾아온 졸음에 깜빡 졸았다. 

동로마 제국의 심장, 비잔틴 황제들의 대관식이 이뤄져 왔던 역사적인 장소에서
여행에 지친 나는 단지 졸고 있는 것이다. 

한참을 지나, 기도시간이 되었는지 사람들이 모이고 종교행사가 거행된다. 

모스크 출구 쪽 전경


기도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모스크를 나왔다.
근처 식당에 들러, 맥주와 간단한 음식을 주문하여 먹고는 
격리 장소를 마련해준 친구 부부에게 줄 간단한 선물을 구입하며 밤거리를 돌다가
처음 왔던 그 장소로 가서 T2번 버스에 올랐다.
공항가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추위와 피곤으로 곧 잠이 들었다. 
 
공항에서 남은 동전 하나까지 모두 긁으니 딱 맞게 
110불로 환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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