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반지 파시는 아저씨 (귀이개 파시는 아저씨)

아르쎄 2011. 7. 15. 15:53

그제 수요일 밤 그 반지파는 아저씨를 전철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오랜만에 지기와 만나  강남에서 3호선 전철을 타고 올라가는 중이었습니다.

 

이 칸에서 저 쪽 칸으로 건너가는 그 분게 물었습니다.

"아저씨 반지 파시지 않나요?"

아저씨는 아무 말없이 지나쳐 갔습니다.

그의 손에는 반지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들려 있었습니다.

 

저 쪽 유리문 건너 아저씨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팔기 위해서 말씀을 하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이 과거와 같지 않았습니다.

전보다 짧았고, 얼굴 표정이 밝지 않았습니다.

 

열차가 흔들렸습니다.

그는 흔들리는 불편한 몸을 팔로 의지하여 겨우 쓰러지지 않을 만큼 버틸 수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열차는 흔들리는지...

 

그 아저씨는 애써 자신의 물건을 팔려고도 하지 않고,

곧 모든걸 포기하고 내리시려는지 문 옆으로 가서 서시더군요.

 

전, 자동 버튼 스위치를 눌러 그가 탄 칸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아저씨의 자존심을 최대한 지켜드리고자 노력하면서

여쭈었지요.

"저 아저씨 아까 팔고 계신 거 하나 줘 보실래요."

그 분은 한참동안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시더니 귀이개 하나를 내어 주셨습니다.

 

"아저씨, 전에 반지를 팔지 않으셨던가요,

옛날에 산 반지 잊지 않고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 무궁화 반지를 좋아하지 않은 것 같아요"

아저씨가 힘없이 대답하셨습니다.

 

더 무언가를 여쭐 새도 없이

열차는 다음 역에 닿았고, 그 아저씨는 열차의 문이 열리자 얼른 내리시더군요.

 

과거에도 그 아저씨의 얼굴엔 표정 변화가 크지 않았지만,

말씀에는 유머가 있었는데,

이젠 그 작은 여유 마져도 찾아 보기가 어려워 졌네요.

 

자꾸만,

흔들리는 열차에서 쓰러지지 않으려고 양손을 땅에 받쳐서 겨우 겨우 버티시던

그 분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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