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퇴근길_야간 삼각산 종주

아르쎄 2011. 4. 23. 09:16

지난 4월9일 토요일

애초 계획한 대로 퇴근 후 북한산을 넘어서 수유리 집으로 가는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차를 집에다 두고 왔다.

6시 좀 넘어 현장을 나와서 김밥을 사고, 렌턴의 건전지를 준비하니 6시 반이 되었다. 그 때부터 현장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산을 올랐다.

족두리봉가는 길에 중년의 커플이 나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올라가고 있었는데, 손잡고 다정히 걷는 그들의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다.

족두리봉에 올랐다 다시 내려와 향로봉 쪽을 향하다 뒤를 돌아보니, 아까 그 커플이 족두리봉에 올라선 모습이 보였다.

그들과의 거리가 꽤 멀었고 어둠이 서서히 깔려 실루엣만 드러났지만 그들이 손을 잡고 함께 서 있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잠시 뒤 그들이 그 좁은 족두리 바위에 올라서는 모습이 보였다. 거기 올라서도 그들은 손을 잡고 있었다. 남자의 손이 산아래 어디쯤을 가리키고 둘은 함께 그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어따. 그 모습은 마치 낭만적인 모습을 떠올리며 누구나 그리게 되는 그런  그림 같았다. 향로봉을 돌아 비봉으로 향하는 어디께쯤에서 렌턴의 배터리를 갈아끼우기 위해서 앉았다. 벌써 어둠은, 가까운 거리조차도 렌턴 불빛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보이지 않을 만큼 무겁게 깔리고 있었다.

갑자기 저쪽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짐승이 움직이는 소리치고는 너무 가깝게 들려 순간 움찔했다.

 누구 있어요?” 했더니 그제서야 저쪽에서 내려가는 길을 찾고 있다는 대답이 왔다. 안심이었다.그 양반은 어찌해서 아직까지 하산하지 않고 산을 헤메고 있었던 것인지.

비봉을 돌아 다다른 사모바위의 넓은 광장으로 인해 문수봉을 향하는 길을 찾는라 제법 고생을 했다. 익숙한 곳이었지만 어둠속에서 렌턴이 비추는 영역만 확인할 수 밖에 없는 한계에서 좁게난 통로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후 행궁지에서도 길을 수 차례 잘못 들어섰다가 다시 나오기를 반복하는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차라리 계속 좁게 이어진 길이라면 길을 잃을 염려가 덜할 테지만 넓은 광장에서 좁게난 통로를 찾는 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모바위를 돌아 문수봉 쪽으로 향하다 뒤를 돌아 보니 멀리서 불빛들이 줄지어 움직이고 있었다. 어느 모임에선가 야간 산행을 하고 있나보다.

이미 캄캄한 밤이라 험한 문수봉을 바로 넘기 보다는 우회를 택하였다. 우회로는 아주 캄캄하고 조용한 골짜기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렌턴이 비추는 좁은 영역만이 내 인지의 한계였다. 가파른 경사를, 오르다 쉬고 쉬었다가 다시 오르곤 하였다.

문수봉을 넘어 대남문 쪽으로 우회전 하여야 했는데, 아무 생각없이 직진을 하고 말았다. 5분 정도 걷다가 그 사실을 인지했지만 이미 들어선 길이니 그대로 직진할 것을 결심하고는 행궁지 쪽으로 가던 길을 재촉했다.

행궁지는 전시를 대비해서 지었던 궁터 자리로 삼각산의 가장 깊속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밤에 온 행궁지는 도시의 소음도 불빛도 전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아까 행궁지로 내려오다 살짝 접지른 발목도 걱정이었고, 이 으슥한 골짜기를 빠져나가기도 걱정이었다. 길을 찾아 걷다보니 나무위에서는 낯선 이방인을 경계하는 듯 거친 새 울음 소리가 들렸다.

샘터에서 시원한 물을 들이키고 하산할 길을 고민했다.

행궁지 아래 쪽 계곡물은 맑은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렌턴에 비추는 물빛이 정말 맑게 빛났다.  그 맑은 계곡물에 얼굴을 씻었다. 입으로 베어든 물맛이 짰다. 그 짠 맛이 없어질 때까지 얼굴을 계속 씻어냈다.

밤만 아니면 이곳에서 머물러 쉬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다. 그러나 밤이 이미 깊었고 내 베낭엔 야영에 대비할 어떤 것도 갖춰져 있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은 밤이 추운 계절이다.

대동문 이정표를 따라 또 오르막을 올랐다. 드디어 대동문! 저 아래엔 도시의 야경이 펼쳐졌다. 이 얼마나 반가운 도시의 불빛인가!

아직 4~50분은 더 내려가야 했지만 익숙한 대동문 앞에 서니 벌써 하산한 듯한 기분이다. 아까 접지른 발을 절며 어슬렁 어슬렁 내려오다가 산나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제막 일과를 마쳤다며 술한잔 하자고 했다.  나는 오랜만에 한 장기 산행과 야간산행의 긴장감 때문에 많이 지쳐 있어서 오늘은 좀 힘든데…” 하며 말끝을 흐렸다.  정말 오늘은 좀 쉬고 싶었다.

하지만 산을 다 내려오니 다시 심신이 회복되는 것을 느꼈다.

전화하니 산나물은 하늘네(상원이네)에 가서 맥주를 마시고 있다 했다. 딸기와 육포를 사들고 하늘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