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은 보름이었다.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본 달은 아주 맑고 크게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문득 산 위에서 저 달을 본다면 얼마나 황홀할까 하고 생각하다, 집에 가면 바로 짐을 싸서 산에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런 결심을 한 얼마 후, 간혹 주말에 같이 산에 가는 지기에게서 핸드폰 문자가 들어왔다. ‘내일 산에 가실건가요?’
우리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부모들 중에, 내가 일요일 아침 산에 간다는 것을 알고 간혹 따라 나서는 이들이 더러 있다. 때로는 내가 번개를 치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이 나를 찾기도 한다.
문자를 받고 내면에서 갈등이 일었다. 오늘 자정에 최고도로 떠오를 저 아름다운 보름달을 백운대 아래 너럭바위(내가 항상 즐기는 명당 자리)에 누워서 바라볼 것인지, 아니면 내일 아침 이 지기와 산행을 할 것인지.
고민하다 나 스스로 타협안을 내곤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내일은 일출을 보기위해 평소보다 조금 이르게 5시부터 산행을 시작할 겁니다.” ‘오늘처럼 맑은 하늘이면 내일 아침 제대로 된 일출을 볼 수도 있겠지’ 생각하며.
평소 일요일 아침 내가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은 아침 6시, 5시에 산행을 시작하자는 제안은, 일어나야 할 시간이 늦어도 4시반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적잖이 부담이 될 것이다.
만일 어렵겠다는 답이 오면 난 당장 백운대에 오를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새벽 산행이 주는 신선함과 일출의 장관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은근히 어렵겠다는 답을 기대했었는데 의외로 ‘좋아요’하는 답이 왔다.
초겨울의 새벽 5시는 조금의 여명도 찾아볼 수 없는 완전한 밤이다. 더군다나 산에서는.
오늘 같은 보름날의 달은 아직 지지 않았을 것이지만, 도선사 길로부터 하루재에 오르는 길은 동에서 서로 움직이는 길이라 서쪽 산 너머에나 있을 달로부터 빛이 비칠 리가 만무했다.
어둠에 묻힌 산길을 랜턴의 불빛에 의지한 채 걸었다. 바람의 미동조차 느껴지지 않은 적막을 깨뜨리는 건 오르는 이의 숨소리와 발자국 소리 뿐.
하루재에 오르자 비로서 아직 지지 않고 떠있는 보름달을 볼 수 있었다. 달은 여전히 둥글고 컸다. 다른 건 지난 밤에 비해 달빛이 많이 붉어졌다는 것이다.
지는 해나 달빛이 붉은 건 아마도 도플러 효과에 따른 장파장의 영향일 것일 테지만 그런 과학적 원리에 대한 고민은 여기서는 제쳐두고 나는 그 붉은 빛이 얼마 남지 않은, 곧 사라져 버릴 존재에 대한 미련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그러면서 내가 가진 현재의 빛깔은 어떠할까 생각해 본다.
산 중턱 쯤에 오르자 서울의 아름다운 야경이 선명히 들어왔다. 직선으로 난 도로의 가로등 불빛은 공항의 활주로를 연상시켰다.
새벽 여명을 느끼며 백운대에 오르니, 새벽의 급격한 온도 변화 때문인지 피어오른 안개로 인해 순식간에 지평선 부근이 흐려졌다. 방금까지 그 맑던 하늘이 언제였나 싶게 아까 그 또렷하던 서울의 야경 또한 희뿌옇게 변했다.
덕분에 그 기대하던 일출은 보지 못했다. 늘상 앉아 쉬던 백운대 너럭바위에 앉았지만 초겨울 차고 세찬 바람을 견디기는 힘들었다.
자리를 옮겨 너럭바위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자리를 잡고 바람막이 텐트를 쳤다. 텐트가 바람에 마구 펄럭였으나, 그래도 이렇게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춰온 것이 다행이었다. 베낭에 넣어온 술과 족발, 떡과 과일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려오는 길에 인수봉 밑에 있는 인수암이라는 암자에 들렀다.
그곳에는 인수와 반야라는 삽살개 두 마리가 있다. 인수는 특히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개라서 일부러 그 녀석을 보려고 들른 것이었다. 인수와 반야를 번갈아 쓰다듬어 주고 나서려는데,
함께 간 지기가 백팔배를 하지 않겠냐고 제안해 왔다.
현재 종교는 없지만 과거 교회에 다녔었던 적이 있어, 왠지 불교와는 익숙하지는 않았을 뿐더라 약간의 이질감도 있는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기의 제안에 나는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반사적으로 선뜻 그러자고 대답했다.
절하는 법을 몰라 첨부터 물어서 배울 수 밖에 없었다. 양 무릎과 양 팔꿈치 그리고 이마를 땅에 대는 오체투지에 대해서 배웠고 내려가면서 들숨을 쉬고, 절을 하고 일어서면서 날숨을 쉬는 호흡법도 배웠다.
108배의 장점은,
오체투지를 통해 겸손한 마음자세를 갖게되고 이를 통해 마음의 평정을 얻으며, 절하는 동작을 통해 평소 쓰지 않던 온몸의 근육을 움직이게 하고, 내장에 자극을 줘서 장운동을 원활하게 하며, 깊은 호흡을 통해 온몸에 산소를 보내고 체내 깊숙이 쌓인 지방을 분해시킨다고 한다.
절을 하는 사이, 숫자를 헤는 것도 잊었다. 얼마나 했는지,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를 절을 기계적으로 반복했다. 그러면서 최대한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겸허한 자세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다들 허벅지가 가장 아프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는 오히려 허리의 통증이 심했다. 아무래도 평소 취하지 않는 자세를 취하다 보니 그런 모양이다.
옆에서 같이 절을 하던 지기가 절을 멈추었다. 나는 어찌할 줄을 몰라 고민하다 절을 십 여 차례 더하고 엎드려 있는 지기에게 108배가 끝났는지를 물었다. 지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냈구나’ 하는 생각보다 이제 끝났구나 하는 안도감과 더불어 ‘나한테 아직 여력이 더 있는데…’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절을 나서서 하루재에 오르니, 아까 구름에 가렸던 해가 하늘 위에 떠있었다.